- 청동수렵무늬거울(靑銅狩獵文鏡) -

  해방 이전까지도 우리나라 산속에는 많은 호랑이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동물원에나 가야 느릿느릿 기지개를 켜고 있는 거드름쟁이 호랑이를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 호랑이는 어떤 존재였을까? 청동수렵무늬거울을 통해 그 모습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최초의 호랑이 그림은 대곡리 암각화에 조각된 것으로, 숭배의 대상이었다. 삼국시대 고구려 벽화고분에는 서쪽을 지키는 사신의 하나로 묘사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십이지신 중 세 번째 간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불교 전래 이 후에는 인간을 다음 세상으로 안내하는 중간자적 존재로 표현된다. 고려시대부터는 그저 하나의 동물로서 취급될 뿐이었다.
  청동수렵무늬거울은 고려인의 용맹함을 잘 보여주는 거울로, 폭이 29㎝가 넘는 초대형(?) 거울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거울과 달리 둥글지가 않다. 모두 여섯 개의 연꽃잎으로 테두리를 꾸몄다. 이러한 모양은 통일신라시대 이후부터 나타나는데, 모두 불교의 영향이다. 거울의 문양면에는 네 명의 사냥꾼이 호랑이 2마리를 사냥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사냥꾼들은 활, 창, 손칼, 낫 등을 들고 호랑이를 포위하고 있다. 호랑이는 어쩔 줄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고 있다. 거울에 호랑이를 묘사하거나 사냥하는 모습은 이 거울이 유일해 보인다.
  최근 뉴스에는 중국의 부패 척결과 관련된 기사가 이슈화된다. 관료의 비리 조사는 “여우 사냥” , “호랑이 사냥”으로 표현한다. 여우는 일반 부패 관료자, 호랑이는 매가톤급 부패 관료자로 난징시 서기 양웨이쩌(楊衛擇)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근대 이후, 우리 속담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20% 정도만 좋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설화에서는 대결의 대상으로서, 인간의 용맹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존재였다. 거울의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고려시대 이후부터 호랑이는 호전적이고 야심에 가득찬 동물일 뿐, 숭배의 대상인 신적 존재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우리도 호랑이 한 마리 사냥해 볼까? 호랑이 냉큼 “드루와!”

  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팀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