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인문학』의 이지성 작가가 말하는 인문학

 

 『꿈꾸는 다락방』과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저자인 이지성 작가, 본인만의 인문학을 실천하기 위해 빈민국에 15개의 학교를 세웠고,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무엇일까? 강연을 통해 우리 스스로에게 인문학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주겠다고 말한 이지성 작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중에게 인문학을 알리기 위해서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됐고, 이후『 생각하는 인문학』을 쓰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5년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문학과 인문고전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인문고전을 읽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2년간 서점과 도서관을 드나들며 여러 서적을 읽었습니다.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서 ‘이렇게 좋은 책들이 왜 인기가 없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문제는 사회에 있는 것 같아요. 학생들은 대학에 와서도 시험이나 취업 등 때문에 인문학이나 교양 혹은 삶의 한 부분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고, 대학생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도 인문학을 접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인문학』을 썼고, 이 책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생각하고 있습니까?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50만 권이 팔리며, 많은 분이 제게 질문을 해주셨고 좋은 말도 해주셨습니다. 그 책 덕분에 다른 출판사의 인문학 서적 판매량이 오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인문학이 더욱 대중적이게 됐다고 생각했고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 계기는 얼마 전 다녀온 베트남 여행이었습니다. 베트남에 처음 도착해보니 한국인이 정말 많았어요. 우르르 몰려 사진을 찍으러 다니더라고요. 저는 제 관광안내를 해준 하노이 대학의 한국어학과를 전공한 학생들과 함께 길거리에 앉아있거나 그 학생들이 가고싶었던 곳을 다니며 여행을 했습니다. 저는 유명 관광명소에서 셀카는 찍지 못했지만, 베트남 사람들의 문화를 느끼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여행지에서 생각하면서 공부하는 인문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해외여행을 가서 오전 6시부터 일어나 단체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베트남의 관광명소인 ‘하롱베이’를 향해 진격하고 셀카를 찍는 것은 비인문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한국 사람들의 인문학적인 태도는 아직 미흡하다고 느꼈어요.

 

  자신을 사랑하라. 필로소피아(filosofía)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학과 회사 생활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회사에 다니는 것은 처자식 때문이고, 대학을 다니는 건 부모님들이 원하는 취직을 하기 위해서이죠.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까요? 그 사람들 삶에는 인문학이 있을까요? 이기적인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겁니다. 논어나 플라톤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보다, 내가 나를 인간답게 대하는 하루의 삶, 그런 순간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진정으로 필요하다고 느껴져요.

  많은 교사가 제게 질문을 해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려면 어떤 교육을 해야 하나요?’ 그럼 저는 ‘선생님 자신이 행복해지면 됩니다.’라고 답합니다. 얼굴에 행복한 빛이 있고 행복한 태도를 보인다면 아이들은 저절로 행복해 하기 때문이죠. 그러지 않고 ‘행복한 교사가 되기 위한 프로그램’같은 곳에 가입해서 교육을 열심히 받고 그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더욱 불행해질 수도 있죠. 학교뿐만 아니라 직장상사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인 일입니다. 자신을 사랑해라. 그것이 인문학입니다.

 

  인문학, 나를 위해 실천하라.

  저는 교사로 재직할 때 퇴근하면 매일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벚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글을 쓰지 않고 벚꽃을 보러 갔어요. 저 꽃을 보고 싶다는 마음은 이 순간밖에 없으니까요. 이 순간은 평생 다시 찾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그림과 클래식 공연을 시간 날 때마다 많이 보러 다녔어요. 그분들의 정신세계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이런 기회들이 제가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었어요. 예술의 전당에서 로댕 전시회가 만 삼천 원쯤 할 때 저의 한달 용돈은 삼만 원이었어요. 어떻게 만 삼천원을 모아서 로댕을 만나고 오면, ‘저런 사람도 있는데 나는 용돈이나 계산하고… 너무 물질적으로 사는 게 아닌가.’라고 반성하곤 했어요.

  또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로댕에 대한 전기를 읽고 나면, 시인인 릴케가 로댕의 비서였다는 점을 알게 되고, 또 릴케의 형상시집을 읽고… 그렇게 나의 인문학적 세계는 깊어졌어요. 그리고 새로운 것을 알았다는 마음에 한동안 들떠 있었죠.

  그러므로 우리 학생들에게 텔레비전을 잠시 꺼두라고 말하고 싶어요. 젊은이들이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김구라에게 빚이 얼마나 있는지 관심을 두기보다는 문학을 만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한겨울에 맨발에 슬리퍼로 버틴 결과

  저는 이른바 ‘도시 빈민’으로 약 10여년간 살았습니다. 23살 때 부모님 보증빚을 떠안게 됐고 27살쯤 되니까 빚이 20억 원쯤 됐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늘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경제적으로 힘들었어도 제가 행복해하는 일들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매일 글을 썼는데, 공부 안한다고 아버지께 많이 혼났어요. 아버지께서는 ‘집안사정도 안 좋은데 공부는 안 하고 안되는 글만 쓰냐!’고 하셨어요. 맞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제 글에 대한 나쁜 평가는 참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다투고 나서 한겨울에 맨발에 슬리퍼로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두 시간 동안은 추위도 모르고 걸었어요. 한참 뒤 추위가 몰려왔고, 추위를 피할 곳을 찾다가 전북대 동아리방에서 쓰다 남은 플랜카드를 덮고 잤네요.

  그렇게 꿋꿋이 버틴 결과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도 현재 제 활동에 만족하고 계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해외 빈민국에 학교를 세우고, 우리나라의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봉사를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지성 작가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Q : 이지성 작가에게 책을 출간하게 하고 전국으로 강의를 다니며 봉사활동까지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뭔가요?

  A : 재미있는 삶을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Q : 대학에서 사라지고 있는 인문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A :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철학을 배웁니다. 대학 입시에서는 철학 문제를 내고 이 문제를 대통령도 풀고 철학자들이 TV에 나와 토론도 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가장 높고요. 즉, 인문학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프랑스와는 반대인 우리나라 사회에 있다고 느껴지네요.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