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조그마한 것에만 분개하는가?
왜 우리는 조그마한 것에만 분개하는가?
  • 김명채 기자
  • 승인 2015.05.03 14:19
  • 호수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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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통계청은 국내 청년 실업률이 11.1%라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11.5%)이후 최고치다. 모두가 아는 바대로 실업률은 여러 단서조항들을 전제로 수많은 실질적 실업자(?)들을 배제하고 집계된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 실업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 추정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청년 체감실업률은 37.5% 정도에 달한다고도 한다.

  지금 우리 대학생들에게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 어떤 세대보다도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열심히공부하고 있지만, 그 노력과 반대급부는 비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저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해야지’를 주문처럼 읊조리며 하루하루를 산다. 그렇지 않으면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증이 아닌 자기개발 중독증에 걸린 셈이다. 이 중독증에 걸려 미래에 대한 비관과 낙관 속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하루를 보내는 대학생들은 현재 약 3백만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금 거칠게 표현해서, 결국 스스로 ‘자발적 노예’를 택하는 대학생들도 많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에서 20·30대 구직자를 대상으로 ‘인턴들의 열정페이 현황’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65.2%의 구직자들이 ‘인턴 근무 시 보수가 적고 일이 힘들어도 기꺼이 참아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이 자발적 노예가 되는 것도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하니,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대학생들의 처지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에대한 분석과 비판은 많다. 이들을 종합하면, 성장에 초점을 맞춘 정책만 펼쳐 청년들을 위한 정책은 도외시하는 정부와 이 정책에 의해 세수 면 등 많은 혜택을 보는 기업들이 그만큼 고용 창출과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다. 말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공허하다. 근본적인 원인을 짚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단순하다. 지금 대학생들이 힘든 것은 대학생들 자신이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있기에 그러하다. 정부와 기업에 잘못이 있다는 책임전가식의 분석만으로는 백 년이 가도 독야청청(獨也靑靑)일 것이다.

  대학생들은 왜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가? "우리 힘들다. 언제까지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가. 우리를 좀 봐 달라."고 소리치는 게 죄인가? 이렇게 소리치는 것은 고사하고 스스로 왜 힘든지 원인조차 파악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진지한 얘기는 언제부턴가 ‘오글거림’ 혹은 ‘진지병’이라는 딱지가 붙여져 경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 빈자리는 대부분 가볍고 우스운 얘기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험담들로 채워진다. 어느 음식점에 무슨 문제가 있고, 학교 무슨 부서 직원의 전화 응대가 불친절하고, 어떤 교수 수업 방식이 마음에 안 들고…. 누군가가 사회 및 정치 등의 부조리함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우리와 상관도 없는일인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나? 당장 나 살기도 바쁜데…’라는 냉소적인 모습을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시인 김수영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내용의 시를 발표한 바 있다. 사회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부분에는 고개를 돌리고, 그저 주위의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화자가 스스로 옹졸함을 느끼며 참회하는 시다. 이 시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 교과서 편찬위원들이 문학책에 이 시를 수록한 것은, 앞으로 자라날 청년 세대가 이를 읽고 청년이라면 무릇 자신의 안위보다도 더 큰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자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리라.

  그렇지만 이 시를 배운 우리는 여전히 작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외면한 채 조그마한 것에만 분개하고 있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이제 한계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이 구조를 바꾸기는 커녕 정면으로 마주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를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은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어져 나가는 것이며, 개인이 사회 구조를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찔하다. 과거 선배들은 정치적 자유라는 시대정신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만들어나가야할 시대정신은 어디로 실종된 것일까. 이를 찾지 않고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까. 그 누구도 변화를 꿈꾸지 않고 자신만 챙기다보면 결국 우리의 후배들도, 그리고 자식들도 지금의 탈출구 없는 세상을 똑같이 살게 될 것이다. 심지어 더 퇴보한 세상을 만날지도 모른다. 나중에 이들을 어떤 얼굴로 봐야할지 모르겠다. 역사에서 우리만큼 앉을 자리가 없는 세대는 없다. 역사상 가장 나약하고 무기력한 청년 세대였다고 조롱을 받을 것이다. 후배들의 이러한 지적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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