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수립하고 필요한 국가로 인정받아 자국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기 위해선 국제정세를 잘 파악하고 뛰어난 정치 감각을 지닌 리더가 필요하다. 제19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으로 선출된 나경원 의원은 ‘뛰어난 정치 감각’, ‘헌정 사상 첫 여성 외통위원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민의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다. 대화와 소통이야말로 외교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는 나 위원장의 강연을 함께 들어보자.

 

  오늘 저는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1년 정도 지났을 때까지만 해도 ‘현 정부가 가장 잘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에 ‘외교정책’이라는 답변이 많았어요. 외국에서도 모두 ‘박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잘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사실 해외인사들이 박 대통령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유를 물어보면 아시아에서 여성대통령은 흔치 않기 때문에, 여성대통령이라는 점만으로도 신뢰감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에선 박 대통령이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이 좋은 이미지를 형성했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와서 우리나라의 외교 관계에 대해 ‘우리나라 외교가 도대체 어떻게 되느냐? 우리만 고립되는 거 아니냐?’는 걱정들이 나오고 있어요. 얼마 전 60주년 반둥회의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일본 아베 총리가 악수하는 사진을 보고 많은 국민들은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하는 불안감을 느꼈을 거에요. 중국‧미국‧일본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도 우리가 챙길 것은 챙겨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죠. 이런 상황일수록 어떤 외교정책이 가장 적합한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외교정치의 한계

  국내 외교정책에서 아쉬운 부분이 크게 세 가지 있는데, 먼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개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외교정책의 특징은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말하죠. 전략적 모호성은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해요. 따라서 우리나라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 무전략적이고 무결정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많았어요.

  중국 정부가 AIIB(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의 주도로 설립한 은행)를 출범할 때도 우리나라는 미국 눈치를 보다가 거의 마지막에 들어갔었죠. 기왕 들어갈 거면 차라리 작년 즈음 일찌감치 들어가겠다고 선언하고 AIIB의 운영 구조와 체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냈으면 좋았을 거에요. 소신껏 결정을 내리지 못해 전략적으로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죠.

  두 번째는 정부가 외교문제와 관련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정확히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최근 논란이 되는 문제로 ‘THAAD(미국이 북한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탄도미사일을 사전에 요격하기 위해 주한 미군에 설치하려는 공중방어시스템)’가 있어요. 사람들은 THAAD가 배치되면 실제로 미사일 방어 효과가 있는지, 탐지 및 공격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정말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정보 감시도 가능한지 등을 궁금해해요. 처음부터 레이더로 북한 쪽을 향할 뿐, 중국을 들여다본다는 말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주장도 있어요. 저는 정부가 THAAD에 관련해 말을 아끼기보다는 정보를 공유해 불필요한 논란을 잠식시키고 국민들 사이에서 이것이 정말 필요한 무기체계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문제는 한일 관계에 있어서 너무 한 방향만 고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풀어야 할 문제가 굉장히 많고 협력해야 할 사안도 다양한데 모든 문제에 역사적 문제를 우선 적용하려고 드는 것은 문제라고 봐요. 역사적 문제를 주장하고 풀어가는 것은 독립적으로 해야 할 일이고,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는 따로 분리해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

  외교부 공무원들은 흔히 외교 정책이 외교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요. 외교라는 것이 고도의 전문적 역량과 기술을 요구하긴 하지만, 사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일이에요. 얼마 전 일본의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어요. 상하 의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자리에서 일본총리로는 최초로 연설했는데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더라고요.

  저도 그 자리에 있어서 직접 연설을 들었는데, 연설문을 정말 미국 사람들 마음에 쏙 들게 썼어요. ‘내가 어린 시절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할 때 하숙집 아주머니가 쿠키를 맛있게 구웠다. 다양한 인종의 동네 사람들 모두가 함께 모여 쿠키를 먹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라는 조금은 편안한 내용으로 시작해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사상이 어우러지는 자유로운 나라이고 기회와 민주주의의 나라라며 이야기를 풀어가더라고요. 중요한 메시지를 이렇게 풀어가는 방식도 미국식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를 통해 미국과 일본이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죠.

  혹시 공공외교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공공외교란 전통적인 외교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당사국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외교입니다. 전통적인 외교에서는 관리들끼리 서로 대화하고 이를 통해 중대한 사항을 결정했지요. 그러나 최근 들어 각광받는 공공외교는 원조나 문화 교류를 통한 긍정적인 여론을 조성을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얻는 외교를 말해요. 요즘 유행하는 ‘한류’도 마찬가지죠.

 

  일본과의 관계, 풀 건 풀고 맺을 건 맺고

  국제정세에서 일본과의 관계는 더없이 중요해요. 역사 문제를 풀기 쉽지 않지만, 경제나 문화 등의 분야에서는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한국이 골대를 움직인다.’며 우리나라가 주요 사안에 대해 입장 표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일본의 행태가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싶어요.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인 잘못에 대한 일본의 입장이 3년 전과 많이 바뀌었어요. 특히 최근의 모습은 더 심각해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신매매’나, 더 심하게는 ‘비즈니스’라고 표현하고 있잖아요.

  또 최근에는 메이지 유신 때부터 유지했던 근대산업시설 23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밝혔죠. 이 중 7곳이 조선인을 강제 징용해 끌고 간 장소였어요. 그런데 일본이 얼마나 얄밉게 등재신청을 했냐하면,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공업단지만을 등록한다는 거예요. 일제 강점기는 제외함으로써 본인들의 과오가 있는 역사를 자르겠다는 의도였죠. 그래서 제가 “보고 싶은 것만이 역사가 아니다.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면 모든 역사를 인정해야지, 일부분만을 발췌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비판했어요. 다행히 최근 유네스코 전문 위원회에서 역사의 일부분만을 잘라서 등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허락하지 않았죠.

   하지만 어쨌든 이런 역사 문제 해결을 모든 문제 논의의 전제로 삼아 이것을 해결할 때까지 외면할 수는 없어요. 같이 풀어가야 해요. 이를 위해선 한국과 일본의 정상이 만나 대화를 나눠야합니다. 실제로 역사 문제의 해결을 무리하게 주장하면 수출액 및 국내 관광객의 급감 등 경제적으로 많은 손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일 정상이 조금은 편안하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역사 문제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하게 담아내면서 풀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모든 외교는 남북통일과 관계 있다.

  외교 정책을 잘 수립해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결국 국내 남북문제 때문이에요. 국제사회에서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선 인구 수가 중요해요. 현재 우리나라 국민 5천만 명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주장에는 국민들 모두 다 동의할 것이에요. 통일이 큰 목표인 건 분명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치느냐에 대해선 입장이 다를 뿐이죠.

  통일로 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에요. 2008년 이후에 단 한 번도 6자 회담이 열리지 않았어요. 고립된 북한은 핵능력을 더 고도화시켰죠. 미국은 ‘전략적 인내’ 정책을 바탕으로 북한이 항복할 때까지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압박하고 있어요. 중국은 중국대로 전략적 인내 정책을 적용하고 있어요. 중국 사람들은 “북한이 이제 우리말도 잘 안 듣고, 더 이상 믿기 어렵다.”고 얘기합니다. 중국은 6자 회담에 북한을 테이블에 앉혀놓고 한반도의 비핵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지만 북한은 이미 그들의 헌법에 자신들은 핵 보유국이라고 명시해놓고 핵개발과 경제개발을 같이 하겠다는, 이른바 ‘병진노선’을 선언했어요. 이런 북한이 회담에 참여할리는 만무하죠.

  그렇기에 저는 핵 문제의 완벽한 해결이 아닌, 핵을 일단 관리할 수 있는 ‘중간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꼭 공개적이 아니라도 비공개적으로라도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쉽진 않죠. 북한과의 관계에선 무조건적으로 대화만 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요. 조금이라도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를 확대하려고 해도, 북한이 이제 아쉬울 게 없다는 식으로 나와 힘이 들어요. 그래도 우리가 더 노력해 남북 관계의 새로운 물꼬를 터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치인과 법조인, 그리고 외통위원장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해요. 제가 판사를 하다 정치인이 됐는데 처음에는 두 분야가 너무 달라 힘들었어요. 우선 판사는 사람을 많이 만날 필요가 없어요. 많이 만나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오히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을 꺼리죠. 반면 정치인은 사람 만나는 것이 일이에요. 그래서인지 판사들은 악수할 일이 거의 없는 것에 비해 국회의원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 악수하는 것이 거의 습관이더라고요.

  그런데 이 두 직업의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판사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재판을 잘 하기 위해선 원고와 피고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해요. 서로의 입장을 각자 잘 듣고 정리하면 화해도 가능해요. 마찬가지로 정치를 잘하기 위해선 사람들의 말, 특히 시민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해요. 길을 걷다 우연히 시장 상인으로부터 듣는 말에서 그 사람을 위한 정책을 떠올릴 수도 있어요. 실제로 민원상담에서 들은 것을 바탕으로 입법안을 낸 적도 있고요.

  외교도 마찬가지에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외교도 잘 해낼 수 있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하든지 주변의 소리를 잘 듣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노력한다면 하고자 하는 일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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