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일까? 그렇다. 하지만 지금 대학의 학문은 자본의 지배하에 있는 학문에 불과하다. 현재 대학에서 학문의 중요성과 위계질서는 자본을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첨단 기술을 통해 자본의 증식에 기여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이 자본을 관리하는(혹은 방관하는) 국가권력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가에 따라결정된다.

  부산대학교 강명관 교수는 저서「 침묵의 공장」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국가, 자본, 기술이 이루는 트라이앵글이다.(중략) 한국의 대학은 이 트라이앵글을 재생산하는 기관이다. 대학은 국가와 자본, 그리고 기술의 요구가 아무리 무례하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다. 그것들이 대학의 존재 원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스스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어깨를 눌러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

  강 교수의 지적대로 이 삼각형에 갇힌 지금의 한국 대학들은 학문의 자율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오직 ‘외부’에 의해 작동하는 수동적인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대학들의 주 발전 계획은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과 특정신문사가 주관하는 대학 평가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짜여진다. 그리고 이 명령을 충족시키기 위한 큰 기준은 두 가지다. 바로 취업률과 논문 생산율이다.

  대학들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기업이 원하는 학문을 교육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학생들을 노동자로서 공급하려고 하는 것이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닌 취업 준비기관으로 전락한 모습이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인적 자원’을 공급하는 기업들의 용역업체가 돼 버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학들이 인문학을 경시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이제 진부하다. 대학들은 인문학 대신 상경대나 의대와 약대, 그리고 공대 같은 단과대학의 학문에 주목한다. 이 학문들은 자본과 기술, 그리고 국가와 가장 밀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문학은 자본과의 거리가 가장 멀고, 또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기술과 국가의 발전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인문학이 무조건 옳고, 숭고하고, 고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과 관련한 최후의 보루이자 학문인 인문학마저 자본의 도구로 이용하거나 정치 이데올로기, 그리고 시장의 생산성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여긴다면 사회에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선, 그리고 어떤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할 대학의 이념은 차단되고 만다. 기업의 용역업체로 전락한지 오래인 현재의 대학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정화 기능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의 위기가 단순히 대학과 이 대학 본부를 짓누르는 세 주체들 탓에만 야기된 것은 아니다. 인문학자들 스스로 그 위기를 자초한 부분도 크다.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대학이 논문 생산율을 높이는데 혈안이 되니 인문학자들 역시 연구비와 사업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 강 교수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진흥재단은 ‘지원’을 통해 학문을 관리·통제하는 기관이다. 실로 부끄러울 정도의 적은 예산으로 인문학은 훌륭히 관리·통제될 수 있다.(중략) 인문학자는 논문집을 발행하고 학회를 개최할 푼돈올 구걸하기 위해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팔아먹은XXX가 됐다. 연구보다는 연구비 신청서가 더욱 화려해지고 두툼해지고 정교해지는 이상한 현상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지금의 인문학은 대다수 보통 사람의 삶과 유리된 채 유한계급의 문화 자본으로 전락했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지적 유희만 펼치며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연세대 진태원 박사는 이에 “인문학자들이 문학·역사·철학의 재해석을 방기한 채 수 백 년 전의 정전들을 그저 신줏단지처럼만 모시는 현상이다.”라며 “과거나 현재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국가와 자본과 어떻게 싸웠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나 다큐멘터리 상영이 알쏭달쏭한 문학·역사·철학을 공부하는 일보다 훨씬 더 가치있다.”고 전한다.

  사회에 팽배한 불의와 모순에 대해 대학과 지식인들 모두 귀와 입을 열지 않는 지금, 우리 청년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는 성공 담론뿐이다. 이 시야를 인문학이 스스로 각성해 앞장서서 깨뜨리고 넓히지 않는다면, 대학과 한국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강 교수는 끝으로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인문학은 수공업이다. 인문학의 유일한 생존로는 인문학자가 다시 수공업의 장인이 되는데 있다. 고통스럽겠지만 연구비와 학진을 우습게 알면서 그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한 낮추고, 대학의 행정적 간섭에서 최대한 벗어나 연구자의 자발성에 입각한 팀을 조직해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문학의 총체성과 비판성을 회복해라. 그렇게 된다면 통제된 공장의 침묵을 걷어내고 다시 사내들의 노래와 아낙들의 웃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마당을 뛰어다니는 건강한 아이들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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