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부작용 심각해 폐지해야”, 대학들 “학내 민주주의 훼손 말아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지난 8월 17일(월), 부산대학교 고현철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총장직선제 유지와 대학민주화 촉구를 외치며 4층 높이의 대학 본부 건물에서 투신했다. 고 교수는 투신 후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0분 만에 숨졌다.


  부산대는 현재 국내 국공립대학교 38개 중 교육부가 계속해서 추진해오고 있는 총장간선제의 뜻을 따르지 않고 직선제를 유지하는 유일한 학교이다. 고 교수는 유서에서 “부산대 총장이 직선제를 고수하기로 한 자신의 공약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결국 직선제 포기를 선언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일종의 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라며 “부산대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 중 하나였는데, 참담한 심정일 뿐이다. 대학에서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는 오직 직선제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교육부는 왜 ‘직선제 폐지’를 원할까
  직선제 폐지 논란은 고 교수의 투신을 계기로 교수 사회에서 대학가,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직선제란 해당 대학 교수와 교직원들이 직접 투표해 총장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1987년 이전에는 정부에 의해 국공립대 총장이 임명되곤 했었으나,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1987년에 목포대학교가 첫 직선제를 실시했다. 이를 시작으로 1991년에 교육 공무원법이 개정되어 직선제를 공식적으로 허용, 이후 1996년에는 모든 국공립대와 사립대 중 44%가 직선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러한 직선제가 오히려 선거과정에서 각종 비리를 야기하는 등 과열 선거의 부작용을 낳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 2011년에는 창원대학교 총장에 출마한 교수가 동료 교수에게 고가의 선물을 전달한 사실을 선거관리위원회가 적발하기도 했으며, 같은 해 부산대에서도 총장 당선자가 선거과정에서 금품을 여러 사람에게 전달한 것이 적발돼 새로 선거를 하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또한 선거로 인해 교수들이 교육과 연구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파벌을 형성하는 등 학내 분열을 일으킨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 2012년에 ‘2단계 국립대학선진화 방안(시안)’을 발표했다. 이 정책의 핵심은 국공립대들로 하여금 직선제를 폐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구조개혁 중점추진 국립대 평가’와 ‘교육역량 강화사업’ 등 각종 재정 지원 사업에 직선제 폐지 여부를 평가 항목으로 반영하며 국공립대들이 직선제를 폐지하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교육부의 정책으로 현재 부산대를 제외한 모든 국공립대들은 직선제를 폐지했고 간선제를 택하고 있다. 간선제란 추첨을 통해 학내·외 인사 중 총장추천위원들을 선정하고 이들의 투표를 통해 1순위 후보자를 선출한 뒤, 교육부에 추천하고 임명받는 제도이다.

  간선제, 실상은 총장 정부 임명제와 다를 것 없다?
  하지만 교육부가 직선제의 대안으로 제안한 간선제 방식에 대해 일각에서는 국공립대를 국가 권력에 종속시키기 위함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 몇몇 국공립대는 교육부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 임명을 제청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총장 임명 제청을 거부당했다. 현재 공주대학교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년 이상 총장 자리가 공석이며, 경북대학교는 지난해 10월 이후 현재까지 총장의 부재를 겪고 있다. 또한 한국체육대학교는 교육부로부터 총장 임명 제청을 2년 동안 4차례나 거부당했고, 결국 체육계와는 관계없는 정치인이 총장에 임명됐다.

  이에 대해 부산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상당수의 국립대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총장 임명 제청을 거부당해 총장의 자리가 공석으로 남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정부권력이 대학을 통제하며 정권 입맛에 맞는 총장을 선임하기 위해 간선제를 실시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국공립대 총학생회 및 교수들 “직선제 폐지 받아들일 수 없어”
  교육부의 입장과는 반대로 국공립대 학생들은 직선제 폐지에 반발하고 나섰다. 부산대 총학생회는 지난 8월 24일(월) 부산대 본관 앞에서 ‘대학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전국 국공립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의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참여했으며, △강원대 △목포대 △서울대 등 전국 18개 국공립대 총학생회는 기자회견문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부산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직선제 폐지에 대해 “교육부가 말하고 있는 파벌 형성 등의 직선제 부작용은 간선제를 택했을 때도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이다. 그러한 부작용을 근거로 직선제 폐지를 요구하는 교육부의 방침을 이해할 수 없다.”고 전했다. 기자회견문에 함께 이름을 올린 경북대 지홍구(정치외교·09) 총학생회장 역시 “총장 선발방식을 해당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법으로 규정해놓았으나, 교육부가 재정지원사업의 평가 항목으로 직선제 폐지 여부를 넣는 등 압박하며 간선제를 강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간선제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인천대학교는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해왔지만 올해 간선제로 전환했다. 이에 대해 인천대 이정은(법학·09) 부총학생회장은 “간선제로 전환하기 이전에는 학생들의 투표를 4% 정도 선거에 반영했다. 따라서 총장 후보들은 등록금 인하 등 학생들을 위한 공약을 내걸어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며 “그러나 총장을 추천하는 총장추천위원을 투표가 아닌 추첨을 통해 선정하는 간선제는 학내 구성원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8월 20일(목), △강원대 △경북대 △부산대 등 전국 국립대 교수회 모임인 거점국립대학교교수협의회연합회(이하 거국련)는 부산대 교수회관에서 총회를 열어 직선제 복귀를 위해 연대할 것을 결의했다. 거국련은 결의문을 통해 “임의추출식 총장추천위원회 선출방식을 폐지하고, 직선으로 총장을 선출하도록 규정을 개정하는 작업을 조속히 추진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대학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교육부의 어떤 정책도 거부하고 이를 폐지하기 위해 총력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고 덧붙였다.

  열띤 공방보다는 각 제도의 부작용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와
  지난 8월 24일(월), 전국 교직자 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는 총장 선출방식에 대한 ‘교총의 입장 및 대안’이란 자료를 발표했다. 한국교총은 본 자료에서 “직선제만이 총장을 선출하는 최고의 민주주의 방식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제도를 보완해 새로운 직선제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교육부는 총장선출에 있어 일방통행식 정책에서 벗어나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대학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대학교육연구소는 직선제 논란에 대해 “총장직선제는 대학 자율과 민주화의 상징이며,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도 상당 부분 확보해왔다. 따라서 정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장직선제를 폐지시키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총장직선제 시행 과정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제도의 폐단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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