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구리온(Ben Gurion) 국제공항에 비행기는 착륙하고, 하나님 나라에 도착했다는 감동이 몰려와 기내에서 쌓였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승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쳐댄다. 아랍 국가들의 영공을 통과하지 않은 자부심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무사 착륙에 대한 기쁨 때문인지 난 어리둥절할 뿐이다. 누구나가 형제자매와 이웃사촌인 듯 옆 자리 승객을 얼싸안고 나누는 히브리어 덕담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한 병사들의 대화 소리처럼 들린다. 그들에게 이 박수는 안도(安堵)의 표시이며, 재탄생의 감동을 느끼는 것처럼 벅차다.

  방콕 공항에서 이 도시로 들어가는 것을 끝내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이스라엘 보안요원들이 잘 정돈된 내 짐을 몇 번씩이나 들쑤셔댈 때는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올 뻔 했다. 그러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랬던 것처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처음 밟은 땅에 입을 맞추고 싶어지는 것은 왜일까. ‘봄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텔아비브에 내 모태신앙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에레츠 이스라엘(Eretz Israel)’이라고 부르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유대국가의 땅이 뿜어내는 기(氣)에 나른함을 느낀다.

  1948년 이스라엘이 현대국가로 탈바꿈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봄의 언덕에는 아랍인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유럽을 유랑하던 유대인들이 이주해 들어오면서 우리가 국제뉴스에서 심심찮게 듣는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전락했고, 아랍인들에게 봄은 영원히 오지 않게 되었다. 히브리어로 언덕을 의미하는‘텔’과 봄을 의미하는 ‘아비브’를 합친이 도시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이곳에서는 적어도 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바벨탑과 같이 쌓아 올려놓은 마천루 사이에서 테러와 보복 테러의 반복이 식상한 뉴스거리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테러의 위험에 몸을 사리고 도시의 아픈 역사만을 생각한다면 여행은 그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비록 폭탄의 파편이 어딘가에서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하더라도 그 파편이 몸 속에 박히기 전이라면 난 그저 여행을 즐길 권리가 있다.

  밀가루와 같은 사막모래가 깔린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나에게 아직 앳되어 보이는 자신의 딸을 가리키며 당신의 나라로 데려갈 의향이 없는 지를 묻는 유대인 아저씨의 능청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유대인은 무엇이며, 아랍인은 무엇인지, 왜 이렇게 천진난만하고 유머러스한 사람들끼리 싸우고 있는 것인지 봄이 없는 봄의 언덕 해변에서 내 몸은 엄청난 양의 자외선에 그을려 간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유대인 아저씨의 눈에는 몸에 털이 없는 아시아 청년인 내가 자신의 어린 딸과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해 보이지만 또한 가장 안전하기도 한 텔아비브를 반드시 가봐야 할 여행지로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현대 이스라엘 건국의 시발점이며, 예루살렘이라는 최고의 성지에 이르기 위한 첫번째 관문으로서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 도시가 없는 이스라엘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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