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수), 감성래퍼 크루셜스타(본명 박세윤)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작업실이 있는 신도림으로 향했다. 훈훈한 외모와 훤칠한 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까지. 첫 대면한 크루셜 스타의 모습은 평소 상상했던 힙합 가수와는 달랐다. 그의 첫인상은 오히려 감성적인 발라더나 인디밴드 보컬 같은 느낌이었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크루셜스타. 그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재미로 시작했던 ‘음악’ , 300대 1 경쟁률 뚫고 소울컴퍼니 입단해…

  인사를 나눈 뒤, 준비해 온 질문지에는 없었지만 본 기자가 정말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 왜 이름은 크루셜스타로 지으신 거예요?
  “크루셜스타는 고등학생 때 지은 이름이에요. 결정적인, 중대한 스타란 뜻이잖아요? 이름 지을 당시에는 그냥 멋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네이버 사전에 있는 알파벳 C로 시작하는 단어들 중에 가장 멋있어 보이는 크루셜을 택해서 크루셜스타로 지었죠. 이름에 대한 의미 부여는 그 후에 이뤄졌어요.”

  - 힙합이라는 장르를 언제 처음 접했나요?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힙합을 접했어요. 그 중에서도 주석 노래를 즐겨 들었는데요. 그러던 중 친형이랑 더콰이엇 형이 아는 사이라 더콰이엇 형의 1집을 우연히 듣게 됐어요. 그것을 계기로 좀 더 깊게 힙합을 접하게 됐죠.”

  - 그럼 음악은 언제부터 만드신 거예요?
  “본격적으로 음악을 만든 것도 역시 고등학생 때부터예요. 힙합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듣다가 비트 제작 프로그램을 통해 힙합 비트를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그 비트에 가사를 써 붙여 랩을 만들었죠. 그 음악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어요.”
2008년, 크루셜스타는 당시 한국 최고의 힙합크루(힙합 가수들의 단체) 소울컴퍼니의 신인래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크루셜스타는 300명이 넘는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오디션에 합격해 힙합계의 주목을 받았다.

  - 소울컴퍼니는 어떻게 들어가셨어요?
  “2008년에 소울컴퍼니에서 개최한 공개오디션에서 1등을 했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오디션은 1차는 데모, 2차는 공연, 3차는 면접으로 진행됐어요. 그 당시에 심사위원이었던 Makesense형이 1차 오디션 때 제 데모 테이프를 들어보고 콩깍지가 씌었는지, 저를 합격시키고 싶어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차 심사에서 다른 심사위원들은 제가 별로라고 했지만 Makesense 형이 합격시켜야 한다고 밀어붙였다고 해요. 덕분에 3차까지 올라가 운 좋게 1등이 돼 소울컴퍼니에 들어가게 됐죠.”

  - 지금은 해체됐지만, 그 당시에 소울 컴퍼니는 힙합 크루 중 한국 최고라고 불렸는데, 들어갈 때 자부심도 대단했겠어요.
  “네. 당연하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힘든 기간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아마추어였던 제가 베테랑 집단이었던 소울컴퍼니에 들어가 보니 그 실력 차이가 엄청 느껴졌어요. 처음 들어갔을 때는 소울컴퍼니라는 이름만으로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해서, 여기에 도취돼 음악을 신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정작 팀의 다른 형들이 제가 노래를 만들 때 마다 다 별로라며 퇴짜를 놨어요.”

  - 많이 힘드셨겠네요.
  “그냥 버텼죠. 같은 팀인데도 불구하고 형들은 저를 인정해주지 않았었고, 그래도 저는 꿋꿋이 곡 작업을 계속해야 했죠. 몸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마땅한 표현이 잘 생각 안 나는데..이건 겪어본 사람들만 알 거예요. 그때는 지금보다 상대도 안 될 정도로 부담감이 컸어요.”

  미술가 집안에 태어난 ‘돌연변이’ 래퍼

  크루셜스타의 집안환경은 힙합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명 화가인 박항률 화백이다. 어머니와 누나도 미술이 전공이다. 이 영향으로 그도 한때 만화가를 꿈꿨다.
“중학생 때까지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 래서 정식으로 그림을 배웠었는데, 소묘학원에서 똑같은 사물만 몇 시간 동안 그리다 보니 미술이 답답하고 재미도 없더라고요. 결국 그만뒀죠. 그러다가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래도 그림을 보는 건 좋아해요” 가족 모두가 미술을 하는데 혼자만 음악을 하게 됐다. 그것도 강렬하고 색깔이 짙은 힙합을. 집안의 큰 반대는 없었지만 주변 친척들은 크루셜스타에게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고 한다.

  - 음악을 시작할 당시에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는지 궁금하네요.
  “반대보다는 걱정을 하셨어요. 제가 음악을 시작할 당시에 힙합은 비주류 음악이었고, 불량적인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리고 명절 때 친척집에가면 서울대학교에 간 저랑 동갑인 친척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른들이 그 친구와 비교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음악활동을 오랫동안 하면서 점점 괜찮아졌어요. 지금은 뒤에서 응원하고 좋아해 주세요.”
  가족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즐거워 보였다.그는 지난 5월에 발표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노래 ‘막내아들’ 뒷부분에 아버지가 그에게 남기는 말씀을 음성으로 담기도 했다.

  - 아버지랑 사이가 좋으신 것 같아요.
  “네, 다른 가족들도 그렇지만 특히 아버지랑 사이가 좋아요.(웃음) 제가 아버지를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요. 사실 아버지가 가진 생각과 신념이 저랑 완벽히 같다고는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해져요. 제가 추구하는 음악이랑 비슷해서 좋아요. 그래서 그런 아버지의 기운들을 닮고 싶어요.”

 

‘사랑’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크루셜스타

  크루셜스타의 대표 곡은 ‘리얼 러브(Real Love)’ , ‘투 나 잇(Tonight)’ , ‘플 랫 슈 즈(FlatShoes)’ ,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 등의 노래이다. 모두 사랑과 관련한 노래들이다. 그래서 그는 ‘사랑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노래에 대한)영감은 다양해요. 그 중에서도 사랑에 대한 영감들이 많았는데, 이것은 특별히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에 요. 사실 플랫 슈즈도 예전에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만들었어요.”

  그러나 발표하는 음악이 늘어날수록 사랑이 아닌 꿈이 그의 노래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꿈을 파는 가게’ , ‘Love yourself’ 등의 곡은 꿈을 꾸는 혹은 꿈을 찾기를 원하는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꿈에 대한 노래를 시작한 이유는 뭔가요?
  “사랑 이야기도 좋지만, 다른 주제로 사람들에게 조금 더 와 닿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하기로 마음먹었죠.”

  지난 8월, 그는 홍대에서 무료콘서트를 열었다. 그 무료콘서트의 입장료가 ‘자신의 꿈을 적은 메모지 한 장’으로 화제가 되었다.

 

▲ 크루셜스타 무료콘서트의 입장료 '자신의 꿈을 적은 메모지 한 장'

- 최근 열린 무료콘서트에서도 입장료를 꿈을 적은 종이로 대신해 화제였죠.
  “무료 콘서트를 한번 열고 싶었는데, 그냥 무료로만 관객들을 받기에는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생각해냈어요. 그리고 이 메모지들을 모아서 앨범의 표지 사진에 사용해야겠다고마음먹었죠. 메모지들을 모아 Sound Cloud(음악을 매개체로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도 올렸어요. 이미지로 남긴 이유는 그 메모지에 자신의 꿈을 썼던 사람들이 이를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에요. 사회생활에 치여 자신이 꿨던 꿈을 잊고 살다가 제 Sound Cloud에 저장되어있는 메모지를 다시 보면서 ‘아 그때 이런 꿈을 꿨었지’라고 상기하며 다시 힘을 내 열심히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팬들에게 힘을 주고도 싶었지만, 동시에 제가 힘을 받고 싶은 때이기도 했어요.”

  - 힘을 받고 싶은 때라니,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쇼미더머니(래퍼들의 공개 오디션을 내용으로 하는 TV 프로그램, 크루셜스타는 쇼미더머니시즌4에 출연해 가사를 틀려 1차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보셨어요? 사실 제가 쇼미더머니에서탈락을 했다고 힘든 건 아니었어요. 제가 쇼미더머니에 나간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이 제게 걸었던 기대를 실수 한번으로 다 무너뜨렸던 것 같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진짜 멘붕이었죠. 그래서 쇼미더머니 직후에, 밖에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고, 대인기피증 비슷한 것도 생겨났죠.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극복해서 괜찮아요. 방송 경험을 더 쌓아서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근데 사실 더 화제가 됐던 부분은 탈락하고나서 재도전하셨던 부분이에요.(크루셜스타는 탈락 후 심사위원들에게 재도전을 요청했으나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바 있다.)
“갈 때 까지 가 본 거죠. 처음에는 탈락하고 나서 ‘그냥 집에 가자’ 라고 생각도 했었어요. 재도 전해서 잘 할 자신도 없었거든요. 제가 발성이 큰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가사를 쓴 것도 아니고..그런데 딱 네 마디만 하고 탈락해서 집에 가기는 너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했어요. 후회는 없어요.”

  조금은 민감한 질문일수도 있었지만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담담하게 질문에 응했다.

  - 그럼 꿈 이야기로 돌아와서..사실 꿈이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꿈이 없는 친구들도 있잖아요? 그 친구들에게는 해주고 싶은 말 없으세요?
  “제가 노래로 ‘너의 꿈을 펼쳐라’라고 얘기를 했었지만, 알고 보니 그게 쉽지 않은 이야기라는걸 알았어요. 주변 환경이나 현실적인 조건들 때문에 꿈을 갖지 못하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제가 단지 ‘꿈을 가져라’고만 쉽게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슬럼프 같은 건 없어요?
  “사실 요즘이 슬럼프예요. 꿈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 같아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아직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명확히 틀이 잡히지 않아서 음악 작업이 난항이에요. 그래서 이것저것 배워보려고 책도 읽고 여행도 하며 경험을 쌓고 있죠.”

  - 일 때문에 음악을 억지로 할 때도 있었나요?
  “당연히 있죠. 그것 때문에 괴리감을 많이 느꼈어요. 재작년까지만 해도 음악이 즐거웠는데, 점차 제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행사 등 일이 많이 잡혀 작년부터는 음악이 일이 돼 버린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이게 돈벌이가 되니까 회사에서도 더 많은 일들을 요구하고요. 물론 재밌었던 것도 있었지만, 오로지 일적으로만 해야 하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래도 처음엔 ‘내게 주어진 일이니까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점점 생각이 바뀌는 것 같아요. 게다가 그렇게 음악을 하다보니까 저의 온전한 모든 것들을 담을 수 없고, 노래를 듣는 사람들도 그런 부분들을 알아채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하기 싫은 건 안하려고 해요. 지금까지 음악을 즐기면서 해왔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려고요.”

  - 그러면 숭대시보 인터뷰는 하고 싶어서 하신거예요?
  “연락을 좀 늦게 드리긴 했지만 진짜 하고 싶어서 한 거죠. 최근에 쉬면서 진짜 하기 싫은 건 안하려고 해요(웃음)”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고 싶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본인이 좋아서 택한 길인 만큼 현재 음악은 그에게 생업이 아닌 즐거움이다. 그렇지만 그 즐거움 속에서도 치열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을 위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방향을 설정한지 꽤 오래 됐어요. 그런데 사람들을 위한음악이라는 것이 광범위하잖아요. 아직까지는이 중 지극히 일부분만 풀어놓은 것 같아서 이제는 무엇을 풀어놓아야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좋은 주제를 찾아 사람들을 위한 음악을 하고,이 음악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제 최종 목표에요.”

  - 계속해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뭔가요?
“진짜 좋으니까 하는 거죠. 노래를 하고 있는 제 자신에 대해 만족하기도 하고.. 또 사람들과노래로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좋아요.”

 -지금까지 작업한 노래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무엇이었나요?

 

▲ 자신의 앨범들이 보관되어 있는 크루셜스타의 책장

  “저는 곡보다는 정규 1집 ‘미드나잇(Midnight)’이라는 앨범을 뽑고 싶어요.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저는 원래 음악을 만들어놓고 몇 달 후에 다시 들어보면 창피해서 못 듣거든요? 근데 미드나잇(Midnight)의 노래들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괜찮더라고요”

  - 왜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요?
  “굉장히 열심히 만들었거든요. 제 생일에 맞춰서 발매하려고 작업 일정도 빡빡하게 잡고, 앨범에 담겨있는 15개 노래들의 제작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부분에 참여했어요. 그렇다보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열심히 한 덕분인지 아직도 여운이 남아요.”

  - 음악을 시작하거나 음악을 꿈으로 가진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로 비춰 보았을때, 음악을 공부하는 걸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보컬하고 싶은 친구들은 보컬 학원을 다니고, 작곡가가 되고 싶으면 작곡학원을 가잖아요. 그런데 배워서 실력을 쌓는 부분보다는 열정이랑 창작욕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해요. 힙합도 누가 알려줘서 잘하게 된 것이 아니었거든요.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연구하며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어내다 보면 자연스레 잘 하게 되는것 같아요.”

  - 대중에게 어떤 가수로 남고 싶나요?
  “사람들한테 다 똑같이 남을 수는 없기 때문에 특정한 이미지로 남고 싶다는 건 없어요. 단지제가 이 세상에 없어도 제 음악만큼은 오래오래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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