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축제는 흔히 ‘대동제’라고 불린다. 본교만 해도 몇 년 전까지 가을 축제를 대동제라고 칭했다. 그리고 현재도 많은 대학들이 축제를 대동제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 대동제라는 단어의 탄생 배경과 의미를 제대로 알면서 사용하는 것일까?

  대동제는 학생 자치기구인 학생회가 각 대학 마다 들어서며 기존의 대학 축제를 반성하며 나온 대학만의 독특한 문화였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군사정권은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선출하는 총학생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총학의 빈자리는 군사정권이 각 학교 학생 조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던 ‘학도 호국단’이 대신하고 있었다. 이 학도 호국단이 주관했던 대학 축제들은 기성 축제처럼 향락과 오락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과거 학교 신문들을 통해이 내용을 알 수 있는데, “대학문화의 표출이 아쉽다. 오락행사의 쇼프로를 번갈아보는 듯한 프로그램의 연속은 대학만의 순수성에 대한 오염이었다.”(<숭실대학신문> 344호, 1980년 11월 27일), “거금을 들여 기성가수들을 초청하여 대학 문화의 대표적 표출이라고 할 수 있는 축제행사에 참가시킴으로써 기성문화 속에 대학문화가 침식돼 버려 대학문화의 본질은 찾기 어려웠다.

  기성 개그맨들도 상상하기 어려운 쌍스러운 말이나 억지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내는데 급급했을 뿐이다.”(<한대신문>, 1982년 5월 19일) 라는 비판들이 그것이다.

  1983년, 고려대학교 축제준비위원회는 이 비판들을 수용하며 기존의 잘못된 축제 문화를 개선하겠다며 처음으로 대동제를 개최한다. 고려대 축준위는 ‘우리의 다짐’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해 “첫째, 축제는 학원민주화의 일원으로서 어떠한 외부의 간섭이나 탄압은 배제돼야 한다. 둘째, 퇴폐적·향락적 사이비 문화의 잔재를 과감히 청산하고 주체성과 실천성 있는 새로운 대학문화 창달의 장이 돼야 한다. 셋째, 민족의 주체성과 뿌리를 찾으며 전 교내 구성원의 동질성을 찾는 건전한 문화의 창조를 위해 축제를 전체적 행사로 부각시킨다.”라고 대동제 개최에 대한 마음가짐을 전했다. 그리고 이 고려대의 대동제는 각 대학들에게 전파되어 점차 대학만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당시의 대동제에서 학생들은 축제의 주체가 됐으며, 축제의 각 행사들은 이 주체적 참여를 보장하는 기제로서 기능했다. 성균관대학교는 1984년에 대동제를 처음 개최했는데, 각 학과들의 특성에 맞는 학술제와 사회 유명 인사들의 시국 강연회, 그리고 여러 민속놀이를 함께 했다. 첫날에는 전통의례의 형식을 빌려 개막했으며 마지막 날에는 교내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줄다리기 같은 대동놀이를 하며 폐막식을 함께했다.

  본교의 경우는 85년에 총학생회가 처음 축제를 주관해 ‘해방 숭실제’를 열고 첫날은 민족 해방의날, 둘째 날은 민족 통일의 날, 마지막 날은 대동제라는 주제에 맞춰 각 학과별 학술제와 강연회, 그리고 민속놀이를 함께 했다. “대동놀이가 전교생이 참석한 가운데 운동장에서 열려 성황리에 마감됐다.”(<숭실대학신문> 474호, 1986년 10월 8일)라는 기사를 보면 그때의 열기를 짐작할 수있다. 교·직원과 학생들이 학교에서 장승배기역까지 왕복하는 통일 마라톤이라는 달리기 시합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대학 축제는 과거 선배들이 만들고자 했던 축제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과거의 축제에서 학생들이 주체였다면, 지금은 모두 객체가 돼 버렸다. 참여할 수 있는 놀이나 행사는 모두 돈을 지불해야 하는 ‘소비’이며, 일부분의 학생들만 주체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저녁에 열리는 공연들 역시 결국 그 본질은 수동적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는 것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공연도 초청한 가수들을 보러온 많은 외부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관람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가수들은 10여 분 남짓 노래를 부르고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단위의 돈을 챙겨간다. 이 공연을 보지 못한다면 교내에 가득히 들어선 주점에 가서 술을 마셔야 한다. 학술제나 강연회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학 축제들은 어쩌면 과거 학도 호국단이 주관 했던 축제보다 더 퇴보한 모습일 수도 있다. 그래도 호국단이 주관했던 축제에는 학교 근처의 소외 계층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 학교 축제를 구경 시키거나, 부모님들과 함께하는 행사 등 의미가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극심한 개인주의 시대에, 서로의 관계가 이미 파편적으로 변해버린 지금의 대학가에서 적어도 축제만큼은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는 날이기를 바라는 건 너무 사치스러운 것일까? 학생회가 대학 축제를 그냥 오락에만 치중하며, 교내 구성원들이 하나 돼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모습은 고민하지 않는다는 과거 선배들의 비판이 딱 지금의 대학가 축제에 들어맞는 것 같았다. 과거 자료를 조사하는 내내 등골이 서늘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을까? 축제가 가까워오자 총학생회가 매일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는 연예인 초청 리스트와 많은 학생들이 누르는 ‘좋아요’가 이 답답함과 무력감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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