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방송에서 뉴스를 시작할 때 앵커가 자신을 직접 소개하거나, 화면에 진행자의 이름 표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예 진행자의 이름을 넣어 프로그램명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앵커의 뉴스 전달 기법은 물론 그의 사회역사관, 외모 등이 시청률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 텔레비전의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들의 이름이 아예 공개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먼저 북한 텔레비전 방송의 보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은 매일 17시와 20시에 두 차례 뉴스를 내보낸다. 보도 시간은 보통 20분 정도이며, 최고지도자의 동정을 별도로 기획하여 알릴 때는 30분 내외, 국경일 등 특별한 경우에는 1시간가량 편성되기도 한다. 20시 보도가 메인 뉴스에 해당되고, 17시에는 전날 20시에 보도한 내용과 일부 새로운 소식을 섞어서 내보낸다. 뉴스는 인트로 시그널과 함께 대개는 한복을 입은 여성 아나운서가 인사를 공손히 한다음 바로 기사를 읽어 나가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보도의 첫 단어는 예외없이 위대한또는 경애하는이다. 김일성·김정일에게는 각각 위대한 수령위대한 령도자라는 수식어가 붙고, 김정은의 경우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로 호칭한다. 102820시 보도를 예로 들면 위대한 당의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방침이 완벽하게 반영된 국보적인 건축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과학기술전당을 현지지도하시었습니다.”가 헤드라인 뉴스의 제목이다. 아무리 사소한 내용이라도 최고지도자와 관련한 보도가 우선이다. 국가수반 격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이 외국대표단을 만난 소식이나, 내각 총리 박봉주가 경제현장을 둘러본 내용보다는 김정일 저작의 일부가 외국의 이름 없는 인터넷 사이트에 인용된 사실이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 이른바 백두혈통에 대한 보도가 끝나면 3-4명의 아나운서가 이어서 다른 뉴스를 낭독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진행자들의 이름은 전혀 공개되지 않으며, 각자 할당된 원고를 읽을 뿐 개인적인 의견피력은 추호도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수시로 아나운서들의 얼굴이 바뀌어 누가 메인 앵커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그 이유를 추적해 들어가 보면 북한체제 존립의 기본 뿌리를 이루고 있는 유일영도체계와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유일영도체계라 함은 북한을 이끌어가는 최고지도자는 단 한 사람이어야 하며, 전체 인민은 그에게만 절대 충성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실제 생활을 통제하는데 최고의 규범력을 갖고 있는 당의유일영도체계 확립의 10대원칙약칭 ‘10대원칙에도 김정은의 방침과 지시를 개별적 간부들의 지시와 엄격히 구별해야 하며, 개별적 간부들의 직권에 눌려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현상을 철저히 없애야 한다.’고 명문화 하고 있다.
 
  어느 집단이건 조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최고정책결정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중간 보스를 중심으로 소규모 권력관계가 생성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점차 비대해지면 상호경쟁이 발생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최고지도자에 도전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하여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북한의 유일영도체계에는 이러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담겨져 있다. 대중에 대한 노출이 잦은 TV방송의 아나운서들도 잠재적 권력자로 부상할 수 있는 직업군에 속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미리부터 막기 위해 이름조차 알리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잣대는 북한 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된다. 2013년 말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올해 4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전격적으로 숙청된 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2인자의 대두를 용납하지 않는 유일영도체계의 맥락과 연결된다. 지난달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개최된 대규모 열병식에서 김영남과 박봉주가 주석단에 위치하지 않고 별도의 초대석에서 관람한 것이나,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방송 카메라를 피해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유일영도체계확립을 위해서는 누구도 예외가 아님을 유추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현상이 김정은 시대에 와서 유독 심해진 것과 관해서는 정치경험이 일천한 젊은 지도자가 갖는 일종의 콤플렉스에 연유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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