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지난달 22일(일)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만나 역사교과서 문제를 놓고 얘기를 나눈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을 추측해 봤다. 이 ‘답정너’라는 신조어를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비슷한 생각은 하셨을 것 같다.
왜 이렇게 불경한(?) 추측을 하게 됐을까. 지난주에 결국 교육부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교육부가 국정화 계획을 발표한 이후 확정까지 이어진 과정들을 지켜보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추측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과정이 어떠했기에 그러냐?’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확정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국정화를 찬성하고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주체들의 대화와 토론의 장을 볼 수 없었다. 그 흔한 공청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을 두고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몹시 드문 일이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역사학계에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찬반 토론 및 공청회 개최를 요구했으나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를 일관되게 무시했다. 새누리당이 토론회를 몇 번 열긴 했으나, 이는 찬성하는 입장을 가진 단체들만 초청한 것으로 토론회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자리였다. 현행 검정제에 대한 검증위원회 및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등도 제안했으나 역시 거부당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찬성과 반대 입장은 조율되지 않고 서로가 주장하는 구호들만 여기저기 나부꼈다. 그러다 보니 사안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정쟁(政爭)으로 비춰져 사람들의 반감도 일으켰다. 어쩌면 이는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자들의 노림수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애초부터 답을 정해놨으니 반대 의견을 듣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현 정부가 현재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결정권의 본질은 국민들에게 위임받은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뜻을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결정한다는 사실이 괘씸하지 않은가? 국정화라는 특성상 집필 과정에서 권력층의 의사가 개입될 수 있는 위험이 있기에 이 위험을 어떻게 배제할 것인지와 이 위험을 무릅쓰고 만들어야 하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반대하는 국민들을 납득시키는 것이 선행됐어야 했다. 하지만 합리적인 이유 대신 그저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한 교과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좌파’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시민불복종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시민불복종 운동은 개인적 신념이나 사회적 정의에 어긋난다고 믿는 정부의 강행적인 조치에 대해 불법을 감수하면서 하는 비폭력적 저항 행위이다. 시민불복종 운동의 특징은 먼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공성과 관련된 태도와 행위라는 것이다. 둘째는 정부의 정책이나 특정 법률에 대해 도전하고 불복종하는 것이다. 법의 권위나 정부의 권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더 높은 정당성을 갖는다면 언제든지 이들을 상대화할 수 있고 철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시민으로서의 불복종이기 때문에 시민다움을 전제로 한다. 폭력이 아닌 비폭력의 방법을 사용해야 하며, 불복종의 행위가 법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행사 후 법의 처벌을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행하고 이들의 관심을 호소해야 한다.
    이는 마땅히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름지기 시민이란 준법정신뿐만 아니라 무엇이 정의이며 선인가 하는 물음 속에서 현실의 법과 제도를 끊임없이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불복종의 일환으로 현재 야당은 헌법소원 등의 저지수단을 강구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획일적인 역사 교육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역사국정교과서금지법을 제정하고 있다.
   또한 전국에서도 동시다발로 불복종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4일(수)에는 경기·대전·대구·제주 등지에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항의 성명 발표가 이어졌다. ‘불복종’을 선언한 시민단체는 수도권 밖에서만 350개가 넘는다. 36개 대학의 4만 2천 234명의 대학생들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불복종을 선언했다. 이미 결과를 정해놓고 국민들의 의사는 무시한 채 강행한 국정교과서, 이에 대해 우리도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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