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어로 된 간판이 낯설다. 영어 와는 사뭇 다른 철자법은 그나마 우리 주변의 곳곳에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포진(布陣)된 이태리어도 아니고 독일 어도 아니다. 음성으로 들리는 포르투 갈어는 남미대륙의 나라들에서 넓게 통용되는 스페인어도 아니고 그렇다 고 불어 같지도 않다.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개막했던 포르투갈이 영국에 게 주도권을 잃고 이베리안 반도의 작 은 국가로 전락했음에도 청제국은 이 나라에게 광동 지방의 알토란같은 이 섬을 할양해주어야 했다. 중국에 이미 반환되었지만 중국 정부가 일국이체 제(一國二體制)를 유지함에 따라 홍콩 에서 배를 타고 가도 새롭게 입국심사 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 이채롭게만 느껴진다. 라틴 유럽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카오에 도착했다. 

  쾌속선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 쳐지는 거대한 카지노는 라스베가스 의 네온사인이 무색할 정도다. 도시 의 입구부터 카지노의 향연이 펼쳐진 다는 사실 자체가 이 도시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듯싶다. 라스베 가스의 카지노가 잠시마나 일확천금 의 꿈을 주는 도시라면 마카오의 카지 노는 왠지 퇴폐와 마약으로 점철(點 綴)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 같다. 아시아에 있는 것은 전부 이상하게 보이는 나약한 오 리엔탈리즘의 잔재인 것일까. 잔악하 기로 유명한 폭력조직인 삼합회가 카 지노를 운영한다는 소문도 있고, 심지 어 한국의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들도 이 곳으로 도박을 하러 온다는 뉴스를 들으며 한 도시의 운명과 분위기를 좌 우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100년 동안 영국의 통치를 받은 홍콩은 세계적인 금융 허브로서의 역 할을 하며 아시아의 진주가 되었지만, 똑같이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포르투 갈의 통치를 받은 마카오는 도박의 천 국이 되었다는 것에서 위정자(爲政者) 의 역할은 실로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카오를 너무 암울 하게 볼 필요는 없다. 카지노는 이 도 시를 규정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 전 체는 아니다. 벽면 하나만이 남아있는 성바오로 성당의 특별한 미장센과 라 틴 유럽의 분위기가 감도는 거리의 색 깔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채로운 길거리 음식과 포르투갈과 광동지역의 음식 이 함께 만들어 낸 퓨전 요리들은 식 도락가들의 미각을 만족시키고도 남 는다. 1990년대까지 아시아 영화를 주 름 잡았던 홍콩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광동어 또한 홍콩에서의 그것보 다 진하게 들려온다.

  아시아의 도시들이 어떻게 근대화 의 길을 걸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에 대하여 관심이 있 는 사람들에게 마카오 여행을 권한다. 홍콩을 보고 마카오에 오면 두 도시의 큰 차이점 앞에서 숙연해질 수도 있겠 다. 거대했던 청제국의 흥망성쇠의 역 사가 현재의 다른 모습을 이야기해줄 것이다. 한 가지 여행 팁이 있다면 카 지노를 하려거든 한 시간 정도만 즐 기다 나오라는 것이다. 중독은 언제나 큰 화를 부르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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