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는 언제나 신선한 느낌을 준다. ‘무(無)에서 시작하는 것’은 조금 부족해 보일지라도 새로운 도전과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Zero’는 젊음과도 닮아있다. 송인우(화학·11) 군, 양승도(화학·11) 군, 김수연(건축·14) 양 세 학생도 마찬가지다. 조용히 공부만 하던 그들이 전국적인 대회에서 대상을 수여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제로’에서 시작했지만 열정을 쏟아 만든 창작물을 환경부가 주최한 ‘대학생 물 환경 정책·기술 공모전‘에서 선보였다. “공학의 진정한 목적은 널리 두루 쓰이는 것에 있다.”라는 그들, “앞으로 이 장치가 우리나라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커다란 꿈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신선한 새 출발을 응원한다.

 

 

참가한 공모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양승도(이하 양): ‘대학생 물 환경 정책·기술 공모전’은 환경부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이에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열렸어요. 논문으로 쓸 만한 전문적인 주제가 아닌 실용적이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관건이었죠.

송인우(이하 송): 저희 학과 홍성호 교수님의 환경공학개론 수업에서 이런 공모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대학생 물 환경 정책·기술 공모전’ 설명회가 본교에서 열린다는 말을 듣고 참석했죠. 그곳에 갔더니 승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공모전을 준비하자고 제안했어요. 뜻이 맞는 학생을 한 명 더 찾다가 수연이를 데려와 같이 준비하게 됐습니다.

  저희는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관심 지역’이라는 구체적인 연구 대상 지역을 선정하고 그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용적인 장치를 기획했어요. 저희의 관심지역은 강원도 태백이었죠.

 

태백 지역을 연구 대상 지역으로 선정한 이유가 궁금해요

송: 최근 강원도에서 강수량이 급격히 줄어서 가뭄이 심각했어요. 태백 말고도 물 부족이 심한 지역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태백지역이 가장 친숙하더라고요. 그리고 상대습도가 높고 일교차가 클수록 저희가 연구한 장치가 작동을 잘할 것 같았어요. 태백지역의 월 평균 습도가 6~70퍼센트에 달하거든요.

양: 저희가 연구를 3월에 시작했었어요. 그때 당시 봄가뭄이 굉장히 심했죠. 특히 가뭄이 심했던 강원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설거지를 하거나 몸을 씻는 생활용수와 식수마저도 확보하기 어려웠어요. 땅이 쩍쩍 갈라진 사진을 보고 정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원도에 댐이 많은데 여기서 저장한 물을 대부분 중부지방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정작 강원도 주민들은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태백 같은 높은 산간지역은 산사태나 홍수가 나면 사람들이 고립될 때도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비상 식수장치를 이용할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세 분이 이번 공모전을 위해 만든 PCM 이슬 응결 장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운영되는 원리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송: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단에 있는 깔때기 같이 생긴 부분이 냉각부이고 아래에 있는 통이 저장부예요. 냉각부에서 생긴 물이 정수 필터 기둥을 거쳐 저장부에 저장되는 원리죠. 이 물의 수질은 식수로 사용해도 될 만큼 깨끗하고, 약 500리터 정도의 물을 저장할 수 있어요.

양: 냉각부는 크게 PCM 튜브와 냉각장치로 구성돼 있어요. 우선 PCM은 자기 자신이 상변화 (물질이 고체, 액체, 기체로 상태가 변화하는 현상)를 일으키면서 주위의 온도를 떨어트리는 물질이에요. 상변화는 쉽게 말해서 물이 수증기가 되거나 얼음이 되는 현상이죠. 이런 상변화를 위해 물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주변에서 열을 흡수해요. 예를 들어, 여름철 에 바닥에 물을 뿌리면 시원해지잖아요. 바로 그게 물이 수증기가 되면서 주변의 열을 빼앗아 주위를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에요. 이렇게 흡수되는 열이나 방출되는 열을 잠열이라고 하죠.

  PCM은 상변화를 통해 열을 뺏거나 내보내는 능력이 좋은 물질이에요. 저희는 이런 특성을 이용해서 튜브 안쪽에 PCM을 넣어 이슬을 더 잘 응결시킬 수 있도록 했어요. PCM은 열을 담기 좋은 그릇과도 같아 열을 흡수해 수증기를 물로 변화시키거든요.

 

냉각장치는 무엇인가요?

송: 냉각장치는 PCM의 효율이 떨어지는 시간대에 가동하는 부차적인 냉각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냉각장치의 냉매가스가 주위의 열을 빼앗아 주위 공기를 냉각시키고, 열을 흡수해 온도가 상승한 냉매가스는 다시 압축기를 거쳐 고압 상태의 냉매가스가 돼요. 고압 상태의 냉매가스는 주위 대기에 다시 에너지를 방출해 초기의 냉매 가스로 돌아와 위의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 장치를 구상하고 제작하신 과정을 알려주세요

양: 먼저 공모전에서는 물 환경에 관한 정책과 기술 분야 중 한 가지 분야에만 지원할 수 있었어요. 저희는 기술 분야에 지원했죠. 주제에 대해 논의하던 중 사막에서 사용되는 ‘와카 워터’라는 이슬 응결 장치에 대해 알게 됐어요. ‘와카 워터’ 는 수증기를 응결시켜 이슬을 만드는 9미터짜리 탑이에요. 하루에 500리터 정도 깨끗한 물을 만들 수 있죠. 저희는 바로 이거다 싶었죠. 이를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사막은 일교차가 평균 40~50도 정도여서 이 장치를 사용하기 적합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교차가 크지 않아 장치를 사용하는 데 제약이 있었죠. 이 장치는 일교차가 클수록 작동이 원활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기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이슬 응결 장치를 연구 주제로 잡았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이슬을 응결할 수 있는 기능만 갖췄는데, 점차 PCM과 냉각기계 등을 추가해 일교차가 적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또한 장치가 잘 작동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철공소를 돌아다니며 간단한 샘플을 만들어보고, 태백지역과 학교 옥상 등에서 실험도 했어요.

송: 이 과정에서는 김수연 학우가 큰 도움이 됐어요. 건축학부인 만큼 능숙하게 컴퓨터로 장치를 설계하고 도면을 제작했죠. 주제 선정부터 최종 도안이 만들어지기까지 약 7개월이 걸렸어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송: 우선 연구자금이 부족했어요. 1차 본선에 진출하는 17팀에게 각각 50만 원이 주어져요. 이 돈으로는 연구비와 교통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했죠. 특히 태백으로 직접 가서 실험을 하다 보니 돈이 더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회식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요.

양: 학교 수업과 실험을 병행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새벽에 실험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밤에 운전해서 태백까지 갔다가 다시 아침에 서울로 와서 수업을 들었어요. 심지어 태백에서 실험을 하고 온 당일에 시험을 본적도 있어요.

  또 공대에는 조별과제가 많이 없다 보니 협력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익숙지 않았어요. 의견충돌이 조금 있었죠. 각자 개성이 강한 친구들끼리 모인 것도 한몫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나중에는 충분한 논의를 통해 협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어요.

 

반드시 새벽에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송: 낮에는 PCM이 대기 중의 수증기로부터 열을 빼앗아 온도차를 만들고 이슬을 획득해요. 하지만 해가 질 즈음부터는 주위 대기와 PCM 사이의 온도차가 작아져 이슬이 잘 응결되지 않아요. 이때부터는 PCM으로 이슬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온도를 다시 떨어뜨려 다음날 아침부터 다시 쓸 수 있도록 해야 해요. 하루를 주기로 해 재활용을 하는 것이죠.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해가 뜨는 새벽부터 효과적으로 물을 응결시킬 수 있답니다.

 

이 장치의 한계나 보완할 점이 있을까요?

송: 사막에서 주로 사용되는 장치라 우리나라에서 이 참고할 만한 사례를 찾기 힘들었어요. 저희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구상해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어요. 또 실제 장치가 아닌 샘플로만 실험을 진행하다보니 장치를 작동시키기 위한 최적의 상태를 예측하기도 어려웠어요. 공익을 위한 것이었으니,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을 만큼의 장치를 구현했으면 좋았겠지만 저희의 지식이 그에 비해 부족했다는 점도 안타까웠죠.

양: 심사에서 정수 필터의 구체적인 설명과 필터의 한계점에 대한 해결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저희가 이슬 응결 과정에 집중하다 보니 정수 과정에 대해서는 조사를 많이 못했던 거죠. 생성한 물의 수질 검사를 해서 이에 적합한 정수 필터를 만들었어야 했어요. 그런데 검사를 하지 못해 적절한 정수 필터를 만들지 못했죠. 이 부분은 차후 보완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장치가 앞으로 물 부족 현상에 어떤 도움이 되 길 기대하시나요?

양: 강원도 주민들이 필요한 만큼의 식수 및 생활용수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모든 가정 근처에 장치를 설치하는 거예요. 냉각장치나 PCM만 잘 갖춰진다면 수증기는 무한으로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식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요.

  저희가 장치 하나당 들어가는 가격을 대략 추산해봤어요. 가구당 하나의 장치를 공급해야 하니 대량제작을 한다고 가정했죠. 알루미늄, 외형 제작비, PMC, 냉각장치, 정수필터의 값까지 모두 계산했을 때 한 장치당 20만 원 정도의 원가가 계산되더라고요.

송: 이 장치는 우리나라의 기후를 잘 반영한 장치예요. 하지만 저희는 이 장치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사용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신 일교차나 습도 등 그 나라의 기후를 고려해야 하고, PCM과 냉각장치 등 재료를 구할 수 있는 경제적 요건까지 생각해 그 나라에 맞는 조건을 설정해야겠지요.

양: 강원도에 가니까 태양광을 활용한 집진 장치(환경오염 방지와 작업 환경의 개선을 위해 각종 먼지나 분진을 한 곳으로 모으는 장치)가 많더라고요. 마을에서 태양열을 폭넓게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태양열 에너지를 통해 냉각장치를 작동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에너지를 따로 구할 필요도 없고 환경오염 없이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죠. 실현가능한 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연구를 계속 진행했으면 좋겠어요.

 

대상을 수상했을 때 어땠나요? 그리고 이런 좋은 결과가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송: 솔직히 대상을 받을 줄 몰랐어요. 우수상과 최우수상을 각각 2팀씩 발표할 때, 저는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있었어요. 대상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아예 못하고, 장려상 정도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대상은 제로팀이라고 발표하더라고요. 2초 동안 모든 것이 정지한 기분이었어요. 어리둥절하면서도 팀원들과 기쁨의 탄성을 질렀죠.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다 보상 받는 듯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른 조들은 거창한 주제에 비해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적었어요. 반면 저희는 공모전에서 요구한 다른 전공과의 융합 여부와 실제 정책상으로 시행될 수 있을 만큼의 현실성, 이 두 가지 핵심 취지를 잘 충족했죠.

양: 저희는 회의를 많이 하고 서로 의견을 공유했어요. 그것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인우가 회의를 중요시했는데 솔직히 저는 처음에는 회의보다 개인적인 연구가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직접 겪어보니 의견의 공유와 충실한 피드백이 아이디어의 발전에 도움이 됐어요.

이처럼 적극적인 회의를 통해 연구의 진행 속도도 빨라졌고 이 연구가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었어요. 저는 공학의 진정한 목적은 널리 두루 쓰이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요. 흔히 공학적 지식을 발전시킬 때 목적과 방향에 대해 잊어버리기 쉬운데 서로 상호 보완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해요. 그 결과로 대상을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팀명이 ‘zero’였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양: 저희가 만든 PCM 이슬 응결 장치는 수증기를 모아 이슬을 만드는 장치잖아요. ‘zero’를 한 국어로 하면 ‘제로’인데 ‘만들 제(製)’와 ‘이슬 로 (露)’라는 한자를 써서 ‘이슬을 만들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또 ‘zero’는 ‘숫자 0’이나 ‘아무것 도 없는 상태’를 의미해요. 이 의미를 담아 ‘환경 오염의 위험 없이 이슬을 만들다.’라는 의미로 팀명을 지었죠. 저희의 연구 목적을 잘 대변해주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송: 저는 저희와 같은 공모전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내년에도 공모전이 열릴 텐데 후배들이 부담 갖지 말고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처음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공모전에 참여해 공부하고 준비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거든요. 그리고 물 정책 공모전에는 기술 말고 정책 분야도 있어요. 공대가 아닌 학과 친구들은 정책 분야로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꼭 도전해서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어요.

양: 저는 팀을 대표해서 홍성호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할게요. 부족한 것이 많았을 텐데 늘 응원해주시고 긍정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큰 힘이 됐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송: 아, 이 자리에 없는 수연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매일 요구하는 것도 많고 마감에 대한 압박도 많았는데 디자인 작업 열심히 하느라 수고했다. 자주 싸우는 오빠들 사이에서 중재하느라 수고했고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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