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암울해 보인다. 무언가에 시달리는 듯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는 듯 어깨는 무기력하게 처져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왜 이곳의 구성원들은 이렇게 시들고 나약해 보이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희대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체스크의 망령(亡靈)이 아직도 곳곳에 서려있기 때문이다. 차우체스크는 25년간이나 권좌에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처형했다. 그의 아내는 측근들을 감시하기 위해 도청을 일삼았고, 국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을 건설했다. 궁전의 벽을 금으로 칠하고 최고급 대리석으로 방을 장식했다. 카사 포포룰루이(Casa Poporului)라고 불리는 이 궁전의 방은 무려 3,200여 개에 달한다고 하니 상상을 초월한다. ‘인민궁전’이라고 불리는 이 웅장한 건축물에는 정작 ‘인민’는 없고 사치와 부정부패만이 득실거렸다. 재미있는 것은 차우체스크는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의 통치방식에 감명을 받았고, 북한의 인민문화궁전를 참고로 이 무시무시한 건물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데 차우체스크 일가는 인민이 없는 인민의 공간에서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향연을 벌이려고 했다. ‘로마사람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토지’ 라는 뜻의 국명을 가진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인 채 들어왔다.

  위정자의 부정부패는 사회 전반을 부정부패의 악순환으로 내몬다. 내가 묵은 곳은 특급호텔이었는데도 매춘부를 부를 수 있는 전단지가 곳곳에 즐비했다. 사회악을 근절시켜야 하는 경찰도, 국가를 지켜야 하는 군인도 루마니아에서는 마약밀매를 했을 정도였다고 하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부패하고 탐욕으로 얼룩진 독재자의 말로는 언제나 비슷하다. 독재 정권은 1989년 민중봉기로 붕괴되고 차우체스크는 인민궁전이 완공되기 직전 총살형에 처해진다. 도나우강이 선사해 준 비옥한 평야지대인 부쿠레슈티에서 벌어진 짧은 민주화 운동을 흐르는 강물은 어떤 마음으로 목도하였을까. 아이러니한 것은 아직도 사회에 팽배한 부정부패 때문에 루마니아 사람들이 지금도 폭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독재자가 만든 독버섯 같은 부패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다. 부쿠레슈티 자체는 참 아름다운 장소지만 나는 이 도시를 여행하라고 권할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단 한 번도 진정한 민주화를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루마니아에서 사람들이 어떤 즐거움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한때 작은 파리라고 불렸던 부쿠레슈티의 거리는 아름답다. 대학 건물도 보이고, 맛있는 커피와 빵을 파는 가게도 있고,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의 정겨운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둘러봤던 여러 장소들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불의의 씨앗을 모두 박멸하지 못한 순진한 사람들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도시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상이 자아내는 밝은 표정에서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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