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

목판으로 인쇄된 소형의 조선전도로 크기는 세로 114.3cm, 가로 64.8cm이다. 목판 4개로 인쇄 하여 지도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지도에 간기 가 수록되어 있지 않아 제작연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1861년 제작된 김정호의 <대 동여지도>의 표현기법과 지도 내용이 유사하 여 그 축소본으로 보이고, 따라서 제작연대는 1860년대로 추정된다.

 지도 상단에 <대동여지전도>라는 명칭이 있 고 동해 쪽 여백에는 지도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조선(朝鮮)’이라는 국호의 어원과 의미, 백두산으로부터 뻗어내린 산줄기의 형세, 그리 고 도성의 모습이 찬양조로 기술되어 있다.

 이 지도는 조선전도 가운데 가장 큰 <대동여 지도>(세로 6.6m, 가로 4.2m)를 축소하여 제작 하였으며 축척은 1:92만 정도이다. 이용자를 배 려하여 전국을 쉽게 관찰할 수 있도록 한 장의 지도로 만들었다. 비록 소형으로 제 작되어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산천과 같은 자연지리 정보와 군현, 군사시 설, 도로, 목장 등 인문지리 정보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독특한 방식으로 산맥을 표현했으며 제주도와 독도는 물론이고 대마도도 우리 영토로 표시한 특징이 있다.

 <대동여지전도>의 제작자로 추정되는 김정호는 국토에 대한 지식이 곧 나라의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지도의 군사적, 행정적 기능에 주목해 국토 정보화에 헌신했 다. 그런데 그가 지도 제작을 위해 백두산을 8번이나 등정했다거나 군사기밀 누설을 우려해 흥선대원군이 <대동여지도 판목>을 소각했다거나 또는 군사기밀 누설죄 로 옥사했다는 등 증명되지 않은 낭설이 정설로 회자되고 있다. 일제가 간행한 초등 학교 교과서「조선어독본」에서 항간의 소문을 실증 없이 교과서에 수록했기 때문 인데, 관이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한 역사 서술의 부작용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일제가 개인 김정호를 영웅화함으로써 조선정부의 무능을 드러 내기 위한 의도로 왜곡한 것이며, 아직껏 잔존하는 식민사학의 폐해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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