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이 도시 의 하급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본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무라이 중 한 명인 그는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 키는 과정에서 눈부신 공(功)을 세웠 다. 아직도 용암을 분출하는 활화산인 사쿠라지마(櫻島)는 그의 활약을 목도한 이 도시의 상징이다. 사쿠라지마 가 아직도 활화산인 이유는 혁명을 이 끈 지도자의 탄생과 일본 근대화의 발단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받아서 가아닐까. 큐슈 지방의 남단에 위치한 작지만 큰 도시 가고시마(鹿兒島) 에 국적기(國籍機)를 타고 당당히 도 착했다. 당당히 도착했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겪은 식민지 시대의 아픔과 파란만장했던 근대화 과정이 묘하게 교차해서 일어난 감정반응은 아니었을까. 일본이 말하는 근대화와 우리가 겪은 근대화는 무슨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 본다.

 가고시마는 일본 근대사를 논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사쓰마번(薩摩 藩)의 중심도시였다. 사쓰마번이 현재 의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와 전 총리 인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정치적 배경 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을 보면 한 도시의 역량은 걸출한 인물을 양산해내 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일본 우익 세력의 본거지가 큐슈 지방이 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지역과 도시를 우리의 시 각으로만 규정하고 단죄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일본어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지만 이 도시에서는 오사카의 일본어 와도 다르고, 도쿄의 일본어와도 다른 왠지 일본어 같지 않은 일본어가 들림을 직감했다. 왠지 시골 냄새가 났다. 일본에서 시골의 냄새가 난다는 느낌은 참으로 색다른 것이었다. 주택가의 작은 집에서 정장 차림을 한 깔끔 하고 말쑥한 모습의 남편과 아직 앞치 마를 두른 아내가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정중하게 남편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과 남편의 뒷모습에 다시 한 번 허리를 깊게 굽혀 인사하는 광경. 그래서 일본 친구들이 가고시마에는 아직도 남자의 ‘권력’이 살아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었나 보다. 이 모습만으 로 우리나라보다 더 막강한 ‘남성 권 력’이 가고시마에 ‘우렁차게’ 살아있다고 섣불리 판단하는 나의 가벼운 영혼.

 흑돼지를 의미하는 구로부타(黑豚) 로 만든 돈가스를 연속해서 두 개나 먹어 식당의 주방장을 놀라게 하고, 관절과 피부에 특히 좋다는 가고시마 천연 온천에 몸을 담구고, 이 지역의 특산물이라는 고구마로 만든 이름을 알 수 없는 디저트를 즐겼다. 가고시 마가 일본의 다른 도시와 특별하게 다른 것을 말한다면 가고시마 사람들에 게는 그들만의 수줍은 표정이 있다는 것이다. 친절함과 그에 곁들여진 수줍 음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 일본 현대사의 굴곡을 직접 곁에서 겪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표정이라는 생각을 해볼 뿐 이다. 지금까지 봐왔던 다른 일본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에게 큐슈의 남쪽 끝 지방 가고시마를 권한다. 꼭 볼 것 이 많아서가 아니라 일본의 다양성을 느꼈으면 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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