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청년교류 동아리 ‘봄’회장 심진성(정치외교·14) 인터뷰

따사로운 햇살 한 줄기가 오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감을 알린다. 얼어붙은 70년의 남북 관계. 이를 녹이려는 따뜻한 움직임이 본교에서 움트고 있다. 남북관계에도 봄이 찾아오는 것일까. 작은 통일을 실천하려는 본교의 남북청년교류동아리 ‘봄’. 봄을 만든 계기와 활동 내역, 그리고 북한을 떠나 남한에서 정착하는 과정과 대학생활을 심진성(정치외교‧ ·14) 남북청년교류 동아리 ‘봄’ 회장을 만나 들어봤다.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하는 동아리를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본교 봉사센터에서 새터민들이 일 년에 한두 번씩 모임을 갖도록 해줘요. 작년에 이 모임에서 회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당시 저는 1학년이었고 학업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 망설였지만, 결국 회장을 해보기로 결정했어요. 회장을 맡고 나니 이왕에 활동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임의 구성원들에게 어떤 활동을 원하는지 물었어요. 많은 의견을 주고받은 결과, 남한의 청년들과 함께 교류하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강의를 듣다가 친해진 김하람(사회복지‧09) 군과 이희수(사회복지‧09) 군에게 모임을 함께하자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마침 그들이 통일과 북한에 대해 관심이 많던 친구들이어서 아예 남북청년이 함께 활동하는 동아리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까지 하게 됐죠. 그렇게 모인 남북청년들이 매주 밥을 먹으며 이야기도 하고, 책도 읽고 타 대학들과 교류도 이어가고 있어요.

  ‘봄’이라는 동아리의 이름은 무슨 의미예요?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하다 보니 함께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났어요. 그래서 작년 12월에 새롭게 ‘봄’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한반도에도 평화라는 봄이 오기를 염원하는 이름이에요. 현재는 스물두 명의 동아리 회원이 있어요. 새터민은 열세 명이고, 남한 학생은 아홉 명이에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요.

  우리 동아리가 미약하나마 남북교류와 통일에 밑거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위해 서로를 먼저 이해하기로 했어요. 이해하려면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서로의 체제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사례를 공부해요. 요즘에는 남북한의 전문서적이 많기 때문에 이 책들을 읽고 다양한 의견을 나눠요. 장준하 선생님의 ‘돌베개’나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의 ‘리얼 노스코리아’라는 책이 기억에 남네요. 저희들끼리만 얘기하지 않고, 전문가를 초빙해 강연을 들으며 견문도 넓히려고 해요. 지난 4월에는 란코프 교수님을 직접 모셔서 얘기도 들었어요.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려고도 해요. 봉사활동이나 문화교류 등을 통해 같이 땀 흘리는 활동을 하는 거죠. 자연스럽게 우정도 쌓이더라고요. 거창한 일이 아니라, 엠티를 가서 같이 재미있게 노는 것도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어요. 엠티에서 북한에는 없는 보드게임을 남한친구들이 소개시켜주면 우리 새터민들은 북한에서 하던 전통놀이를 알려주는 거죠. 그 외에도 레크리에이션 활동도 하고 같이 먹고 마시면서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껴요.

  남한에는 어떤 계기로 오셨나요?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를 보면서 남한사회와 문화를 알게 됐어요. 북한에서 배우던 남한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처음 봤던 드라마는 이병헌과 송혜교가 나왔던 ‘올인’이에요. 그때 이병헌의 연기에 푹 빠졌어요. 다른 드라마들도 보면서 ‘남한은 정말 북한과는 다른 세계로구나’라는 감탄을 하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4년 동안 노력해 2010년 3월에 입국할 수 있었죠.

  입국한 뒤 이런저런 교육을 받고 8월 말에 남한 사회로 나왔어요. 드라마를 통해 가졌던 환상들은 곧 무너졌어요. 드라마에서 보이는 화려한 생활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누리더라고요. 그래도 남한에 와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굶어 죽을 일은 없잖아요. 북한에서는 쌀밥 한 그릇 먹기도 정말 힘들어요. 명절에나 쌀밥을 먹을 수 있죠. 하지만 여기서는 음식이 남아도니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또 저는 북한에서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어요. 그래서 항상 공부를 더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남한에서는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인터넷 강의나 교육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북한보다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도 좋아요. 다양한 언론을 접하면서 사회를 보는 시각도 넓어졌어요.

  대학 입시공부는 어떻게 했고 정치외교라는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새터민 학생들을 교육하는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 다녔어요. 그런데 간절함이 부족했던 탓인지 처음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어요. 입시에 실패하고 나서야 대학교를 가야 한다는 간절함이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재수를 결심했어요. EBS 교재와 강의를 이용해 독학으로 재수를 했어요. 남한의 학생들은 12년을 공부해서 대학에 가는데, 이들과 비교하면 제 실력은 정말 부족했죠. 정말 독하게 공부했지만 역시 비슷한 실력이 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입시 공부를 했던 것이 지금 대학에서 강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정치외교를 전공하고 있지만, 사실 정치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냥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만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서울대학교에서 정치외교를 전공하고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있는 형을 만나 제 꿈을 이야기 했어요. 그때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에 들어가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그래서 대학 입시 공부를 했는데, ‘법과 정치’라는 사회탐구과목을 공부하면서 정치와 법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어쩌면 정치가 법보다 위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죠. 그래서 정치외교학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우리 학교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입시를 준비할 때 매일 신문을 읽었어요. 그런데 ‘숭실대학교가 통일 시대를 이끌어 가는 학교’라는 신문광고가 자주 나오더라고요. 이 문구에 호기심이 생겨 숭실대학교의 역사를 들여다 봤어요.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인 대학교로 본래 평양에 있었고, 일제강점기 시대에 다른 대학교들과 달리 민족의 정체성 말살에 항거하고 자진 폐교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역사적인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또 제가 기독교인이에요. 본교의 이념에도 맞고요. 그래서 본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정착하면서 힘들었던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롯데월드에 갔는데 언어의 장벽을 느껴 좌절했던 적이 있어요. 롯데월드 자체는 드라마에서 봤던 꿈과 모험의 나라였어요. 그런데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기다리면서 남한의 중고등학생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처음 듣게 됐어요. 남한 말을 대체로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학생들이 신조어나 줄임말, 비속어를 많이 사용해서 알아듣지 못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죠.

  정체성 혼란도 많이 느꼈어요. 나는 대한민국에서 무엇인지, 그리고 왜 공부해야 하고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정체성을 외면하고 남한 사람들의 행동과 문화를 무작정 따라 하기도 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정체성은 이미 북한에서 형성됐는데 이전의 정체성을 억지로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만을 모방하는데 급급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됐어요. 사실 북한 체제가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건전한 여가문화와 예의범절 등 남한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긍정적인 면도 있어요. 그래서 남북의 좋은 점을 모두 받아들이되, 기존의 정체성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어요.

  앞으로 동아리를 어떻게 운영해나갈 건가요?

  봄을 동아리연합회에서 인가하는 정동아리로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올해에 인가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4개 이상의 단과대학 학생이 동아리 회원으로 고르게 있어야 정동아리로 인가받을 수 있어요. 봄에는 4개 이상의 단과대학 학생들이 있었지만, 인문대학과 사회과학대학 학생의 비율이 높아서 정동아리가 되지 못했어요.

  정동아리가 아니다 보니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회원들끼리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모아 동아리 운영을 해나가고 있어요. 다행히 강연을 해주시는 초청강사님들이 동아리의 취지를 알고 모두 무료로 강연을 해주세요. 오히려 밥을 사주시고 가는 분들도 계시고요. 지금 쓰고 있는 이 동아리방도 봉사센터에서 창고처럼 쓰던 곳이에요. 봉사센터에서 봄의 취지를 알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게도 동아리방을 내주셨어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동아리를 아직까지 잘 운영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해서 작은 통일을 실천하고 숭실을 대표하는 남북 학생들의 연합동아리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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