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숭실의 밤을 엿보다

 

겨울을 알리는 입동이 지났다. 겨울의 문턱을 넘어서니 하루가 다르게 해가 짧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숭실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백마상 위에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이면 햇살이 아직 걸려 있었던 것 같은데. 이미 해는 다 져버리고 어두워진 오후 7시, 백마상 앞 벤치에 앉아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지켜보았다.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마다 언뜻 보이는 학생들의 표정은 저마다 달랐다. 힘든 하루를 보냈는지 지친 표정을 한 남학생과 학과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아무 표정 없이 걸어가는 여학생도 있었다.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한 것인지 마냥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의 모습도 보였다. 커피나 책을 들고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학생들도 많았다. 이들의 그림자를 쫓아가 보니 마치 학교 건물의 밝은 불빛들이 이들을 반기고 있는 듯 했다.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이들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쉽사리 잠들지 않는 숭실의 밤을 직접 들여다보았다.

    어두운 밤, 목적지를 향하는 학생들이 머무르는 곳
  백마관 벤치에서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학교의 중앙에서 층층마다 빛을 환하게 밝힌 도서관은 마치 어두운 밤바다에서 홀로 불빛을 비추고 있는 등대처럼 느껴진다. 바다를 헤매던 배들이 등대의 불빛을 좇아 항구로 들어오듯이 많은 학생들도 어둠을 가르며 도서관을 찾아왔다.
  도서관 앞 흡연구역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는 학생들의 모습들을 살펴봤다. 대부분 남학생들이었다. 주변은 담배연기와 담배꽁초, 그리고 각종쓰레기들로 가득했다. 이때 남자 둘이서 슬리퍼끄는 소리를 내며 흡연구역 쪽으로 걸어왔다. 이들은 익숙한 듯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주변에 서있던 한 남자가 다가와 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한데, 불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이들 중 한명은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건네줬다. 모르는 사람에게 라이터를 빌려주는 일은 비흡연자인 나에게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벤치에 앉아 있는 동안 이런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모르는 사람인데 이렇게 막 빌려줘도 돼요? , 에이, 돈 드는 것도 아닌데요. 남학생들은 간간이 욕을 섞어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들은 주로 시험과 졸업, 그리고 취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휴식을 끝마친 이들은 집에 가고 싶다. 빨리 하고 가자. 들어가자”며 슬리퍼를 끌며 다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외에도 적게는 1명부터 많게는 4‧5명이 함께 나와 담배를 피며 욕이 섞인 넋두리를 하곤 했다.
   이들이 느끼는 지금의 현실이 혹시 어두운 밤과 같지는 않은지 생각해 봤다. 열심히 나아가고 싶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머무를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으로 보였다. 이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항했다가는 거센 밤바다에 맞서다 그만 전복할 수도 있다. 그래서 등대가 있는 조그마한 항구에서 잠깐 쉬면서 다시 파도를 이겨내며 항해를 계속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태양은 너무 더디게 뜨는 것 같고, 풍랑도 잦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답답하지만 계속 항구에 정박하며 준비만 할 수밖에 없다. 계속 기약 없는 준비만을.

  그들의 젊음은 밤과 낮을 구분하지 않았다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도서관에 모여 밤을 지새우고 있다면, 학생회관에서는 학생들이 밤을 새며 자신들의 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동아리방에서 해가 뜰 때까지 술을 마시거나 동아리 활동에 매진한다. 동아리방이 모여 있는 1층 복도로 향했다. 학생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복도 밖까지 들려왔다. 학생들은 동아리방에 삼삼오오 모여 야식을 시켜먹거나 동아리 활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학생회관 2층에는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스윙 갤러리’라는 곳이 있다. 스윙 갤러리에서는 지난 18일(수)부터 23일(월)까지 미술 동아리 화인부락의 정기전시회가 열렸다. 정기전시회를 준비하는 화인부락 동아리방을 찾았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여러 그림들과 마구 어질러져 있는 미술도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손에 유화 물감을 묻혀가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남학생도 보였다. 캔버스에 큰 눈을 가진 회색 고양이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작품 마무리를 위해 그림 그리기에 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어렵사리 말을 건넸다. 색감이 엄청 밝네요. 그림만 보면 여자가 그린 건 줄 알겠어요. 왜 고양이를 그리시는 거예요? , 딱히 이유는 없고, 동물을 좋아해요. 1학기 전시회 때도 동물 그림을 그렸어요.”, 여기는 그림을 잘 그려야만 들어오나요?” 이때 책상에서 공부하던 동아리 선배로 보이는 사람이 대답했다. 아니요.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요. 동아리에 가입해서 그림을 안 그리는 친구들도 많아요.”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원래 야외 전시회를 여는데, 이번에 비가 오는 바람에 실내전시로 바꿨어요. 놀러오세요. 화인부락에 가입하셔도 되고요. 회비만 내면 돼요.” 평소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잘 그리지 못해 배워보고 싶었기에, 혹하는 제안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후 인사를 하고 화인부락을 나왔다. 나와서 보니 손 에는 언제 묻었는지 모를, 빨간색 유화물감이 물들어 있었다.
   화인부락을 나와 바람개비 동아리방의 문을 두드렸다. 바람개비는 교내 발명동아리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쁘게 움직이는 부원들이 보였다. 그들도 23일(월)부터 열리는 작품전시회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도통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아 어떤 발명품인지 물었다. 이건 제습기인데, 윗부분에 화분을 놓았어요. 제습기가 작동하면서 증발하는 물을 자연스레 화분의 식물이 흡수하니까 화분에 따로 물을 안 줘도 돼요.”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부원들이 계속 동방에 들어왔다 우리 신문에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다음 주에 열리는 작품 전시회에도 오셔서 사진 찍어주세요. 오면 제가 에스코트 해드릴게요” 바쁜 와중에도 그들은 활기가 넘쳤다. 부담 없이 여러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초대장이랑 포스터 드릴게요. 꼭 오셔야 돼요” 이에 웃으며 간다고 답했다.

  학교 안전을 위해 밤길을 나서는 사람들
  많은 사고와 사건들은 주로 밤에 발생한다. 어두워지면 남의 시선을 피해 몸을 숨기기 쉽다. 그리고 낮에는 잠들어 있던 악한 본성들이 하나 둘 눈을 뜨기 시작한다. 학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에 맞서 학교의 안전을 지키며 밤을 지새우는 구성원들이 있다. 동아리방의 불이 하나둘꺼지기 시작하는 어두운 밤, 학생회관에서 경비아저씨를 만났다. 경비아저씨께 순찰을 같이 돌아도 되냐고 여쭈었다. 아저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학생회관 순찰은 1층부터 시작했다. 순찰일지를 들고 수십 개의 동아리방을 일일이 돌며 밤 을 새는 학생들은 없는지 빈 동아리실의 불은 꺼져있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귀찮지 않으세요? , 학생들 얼굴도 보고 좋지.” 경비아저씨는 순찰을 돌며 학생들과 살갑게 농담도 주고받았다. 학생들이랑 친하신 것 같아요. , 당연하지, 학생들이 착해서 말도 잘 들어. 다 내 자식 같지 뭐 , 일하신 지 오래되셨어요? , 꽤 됐지. 근데 일을 하다가 몇 번 쉬었어. 근데 일을 안 하면 또 심심하더라고. 동아리실이 미래관 건물에 있었을 때도 일을 했었어. 그때는 중앙난방 말고 각 동아리방마다 전기난로를 사용했지. 근데 순찰을 돌다가 방 유리창 너머가 빨갛게 물들어 있는 거야. 이상해서 방을 열어봤더니 전기난로 때문에 불이 났더라고. 학생 두 명은 술에 취해서 불난지도 모르고 그냥 자고 있었고. 너무 놀라 학생들을 바로 깨워서 내보냈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8시 반에 시작했던 순찰은 40분이 지난 후에 끝이 났다. 어쩐지 40분이 짧게 느껴졌다. 아저씨는 유쾌했고 학생들을 진정으로 아끼는 것 같았다. 나도 이렇게 보람찬 일을 할 수 있을까? 순찰이 끝난 뒤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었다. “혼자 돌 때는 심심했는데, 이렇게 같이 돌아줘서 재미있게 순찰했네. 또 놀러와.”
   교정에 나오자 빨간 불빛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빨간 불빛의 정체는 자율순찰대가 들고 다니는 경광봉이었다. 자율순찰대는 본교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5개의 조가 요일별로 돌아가며 오후 8시 반부터 새벽 1시 반까지 학교 곳곳을 순찰한다. 자율순찰대를 따라 나섰다. 밤이 늦었고 비도 와서 찬바람이 거셌다. 수요일 순찰 조장을 맡은 순찰대원에게 말을 건넸다. 춥거나 더울때는 순찰 돌기 힘드시겠어요. , 오늘 유독 춥긴 한데, 일주일에 한 번 도는 거니까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순찰을 돌던 도중 한 순찰대원이 나에게 물었다. 근데 순찰대가 다 남자잖아요. 이렇게 남자들이 몰려다니면 여학생들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 글쎄요. 멀리서부터 빨간 경광봉 불빛이 보이니까 무섭기보다는 ‘순찰대 구나’ 하고 안심이 될 것 같은데요? , 아, 우리 순찰대 본 적 있어요? , 가끔 저녁 늦게 집에 갈 때 순찰 도는 거 본 적 있어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학생회관과 운동장 쪽을 돌아 문화관 밑으로 내려갔다. 문화관 뒤쪽 길은 가로등이 없어 무척 캄캄했다. “이 길은 처음이죠? 여기는 가로등 없어서 조심해야 해요. 가끔 여기서 학생들이 나오곤 해요. 우리를 보고 후다닥 도망가더라고요.” 이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고 어색했던 분위기는 조금 풀어진 듯 했다. 순찰대 조장에게 물었다. “자율순찰대 일은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 “사실 장학금 때문에 시작했죠. 또 예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담배 피우러 나왔는데 순찰대가 돌아다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지원한 것도 있어요. 그리고 순찰대하면서 느낀 게 있는데, 12시가 넘으면 학교에 있는 가로등이 꺼지거든요? 근데 순찰대가 여러 번 돌아다니는 것보다 오히려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는 가로등을 새벽까지 켜 놓는 게 더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들도 덜 무서워할 것 같고요.” 그는 장학금 때문에 시작했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학생들의 안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신문사에 돌아와 가방을 챙겨 학교를 나섰다. 그때까지 그들은 여전히 빨간 불빛과 함께 학교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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