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 제883호 지구의(地球儀) -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과학사상가인 최한기(崔漢綺)가 1830년경에 제작한 것으로, 현전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지구의이다.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 널리 퍼져 있던 조선사회에 구형의 지구의가 알려진 때는 인조 23년(1645년)의 일이다. 청나라에 인질로 가 있던 소현세자가 북경에서 독일인 신부 아담 샬(J. A. Schall, 湯若望)로부터 천문․수학․천주학 서적과 천주상(天主像), 여지구(輿地球)를 받아왔다. 그런데 이때 전해진 여지구는 본 박물관의 <지구의>와는 달리 지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혼천의(渾天儀)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

  본 박물관 소장 <지구의>는 ‘지구의’ 기능으로 제작된 유일한 것으로, 희귀성 및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886년 11월 29일 보물 제883호로 지정되었다. 지름 23cm의 청동제 구형이 반원형의 목발[木鉢; 사발모양의 받침대] 위에 남․북축이 수평이 되도록 놓여져 있는 구조이다. 축대로 빙빙 돌려가면서 지구 전체를 볼 수 있으며, 10° 간격의 경선과 위선이 있고 남북회귀선, 그리고 태양의 길인 황도(黃道)가 음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황도에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24절기가 표시되어 있다. 받침대인 목발의 아가리에는 360°의 눈금을 새긴 원형의 동판이 둘러져 있어 천도(天度)와의 관계를 측정 시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지구의>에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는 세계지도의 윤곽과 지명의 표기 방식 및 내용이 최한기 저술의 『지구전요』에 수록된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와 일치하여, 최한기가 자신의 저술을 토대로 지구의를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한기는 우주의 천체와 기상, 세계의 인문지리 등을 수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리서인 『지구전요』를 발간하였으며, 1834년에는 <지구전후도>(본관 소장)를 목판본으로 제작하여 보급하였다.

  본 박물관 소장 <지구의>는 19세기 묘사가 매우 정교하고 실용성이 강조된 유일의 지구의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세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제는 조선도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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