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인터넷으로 손쉽게 항공권을 구입하고 시간만 낼 수 있다면 언제든갈 수 있는 제주도지만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비행기를 안 타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비행기로 제주도에 갔다 왔다는 사실은 여행 좀 해봤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었다. 여행 자유화가 되기 이전의 제주도는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마음 설레는 장소였다. ‘산넘고 물 건너’ 세계인이 인정한 자연유산 제주도가 우리에게 있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같은 반이 된 친구가 제주도에서 서울로 유학 왔다는 말을 했을 때 더 큰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새롭다. 육로로 갈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한반도의 마침표 같은 이 섬은 이국적이다. 남국의 정취를 머금은 청정(淸淨)한 구름은 이 ‘섬 도시’를 영원히 지켜나갈 수호신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우리의 오감(五感)은 청정함에 의지하며 몸 속의 모든 장기(臟器)마저 해독이 되는 듯한 느낌에 빠져든다. 제주도는 한반도가 선물로 선사받은 보물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삼다도(三多島)의 의미는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남자들에게 있어 돌과 바람보다 ‘여자’가 많다는 사실은 얼마나 즐거운 환상이고 마음 설레는 것이란 말인가. 성산포의 일출을 보고자 근처의 민박집을 찾고 있는 나에게 아직 앳되어 보이는 소녀들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자 부러운 듯이 나를 쳐다보는 소녀들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1989년 12월 중순 서울을 떠나 속리산과 부산을 거쳐 배를 타고 제주항에 도착했다. 12시간이 넘는 항해 때문에 생긴 뱃멀미 증상은 어린 소녀들의 미소에 치유되었다. 삼다도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그것은 이 섬사람들이 가진 깨끗한 영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깨끗한 영혼은 삼무도(三無島)를 만들었다. 도둑이 없으니 대문이 없고, 모두가 풍요롭게 살기에 거지가 없는 이 위대한 섬에 경의를 표한다. 바람은 나쁜 것을 날려버리고, 힘찬 바람에 연마(硏磨)된 휘황찬란한 돌과 아름다운 여인이 섬을 채운다.

  해녀의 힘찬 자맥질에서 강인한 생활력을 느끼고, 봄날의 유채꽃은 섬 전체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속에 빠진 것과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민족정기는 한라산에서 완성되고, 제주 감귤과 한라봉은 오렌지가 따라올 수 없는 향취를 자아낸다. 만장굴은 선사시대의 모습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천지연 폭포와 정방 폭포는 더할 나위없는 스토리텔링의 현장이 된다.

  새삼스레 제주도 여행을 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신속하고 편한 방법으로 이 아름다운 섬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제주도의 매력은 계속 발견되어 왔기에 몇 번의 여행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죽기 전에 과연 몇 번이나 이 섬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략 몇 년쯤은 제주도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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