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수도 로마(Roma)를 영어 식으로 ‘로움(Rome)’이라고 발음하면 우리의 김치가 아닌 일본의 ‘기무치’를 먹는 느낌이 든다. 마치 이탈리아 셰프가 손수 구워낸 피자를 먹고 싶은 사람에게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 낸 냉동피자를 던져주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도시의 이름만은 왠지 영어로 발음하고 싶다. ‘Vientiane’을 현지 사람들은 불어식으로 발음하여 ‘위앙짠’이라고 한다는데, 이 발음은 도무지 너무 생소하여 내 머릿속의 메모리 카드에 입력되지 않으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인들이 ‘Viang Chan’ 이라고 명명한 것이 라오스 식으로 변형되어 다분히 괴물스러운 위앙짠이 되었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위앙짠보다는 비엔티엔이 더 품격 있는 소리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느낌인 것일까. 라오스 여행의 시발점(始發點) 비엔티엔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하루 이틀 정도 묵은 후 방비엥과 루앙프라방까지 여행을 이어가고, 더 시간이 있는 여행자라면 고산지대인 루앙남타까지 북상(北上)한다.

  이 도시에 있으면 바로 옆 나라인 태국의 방콕이 얼마나 선진적인지를 절감(切感)하게 된다. 편의성 면에서 서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어려운’ 방콕이지만 비엔티엔에서는 방콕은 가히 천국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하철, 스카이 트레인은 당연히 기대도 하지 않았고, 미터 택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툭툭’기사만이 어떻게 하면 외국인 ‘호갱’을 잡아볼까 혈안이다. 택시 기사는 한 나라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최전선에서 일을 한다. 어떤 사람은 애국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나라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매국노가 될 수도 있다.

  메콩 강가에 밤마다 열리는 야시장 주변과 배낭여행객들이 모이는 여행자 거리를 제외하고는 도시 전체가 불 꺼진 산골 마을 같다. 저 앞에 보이는 메콩 강만 건너면 태국의 우돈타니가 나오는데 지금이라도 국경을 넘어 태국의 현란한 밤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왜 태국 사람들이 라오스를 촌스러움의 대명사 정도로 치부하는지 어렴풋하게 이해가 된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존재하는 많은 도시들이 ‘권력’ 다툼을 한다고 가정하면 이곳 비엔티엔은 서열이 낮아도 한참 낮은 도시로 분류될 것이다.

  중동에 가면 수많은 모스크가 있고 유럽에 가면 성당과 교회가 즐비하듯이 불교국가인 라오스에서도 사원(寺院)이 관광 명소가 된다. 중요한 것은 모스크와 성당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료지만 라오스에서는 거의 모든 불교사원이 입장료가 있다는 사실이다. 현지인에게는 무료지만 관광객에게는 꽤 많은 금액의 입장료를 징수한다. 입장료는 큰 스트레스가 되며 부처님의 자비심에 큰 상처를 낸다. 서울에 있는 조계사와 봉은사가 외국인들에게 입장료를 징수한다면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것인가.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나 처음 가보는 여행지가 주는 낯설음과 불편함이 도시의 모든 것을 규정할 수는 없다. 6천 개가 넘는 불상을 모셔놓았다는 왓 시사켓, 라오스 지폐에도 들어가 있는 명소 탓 루앙, 빠뚜싸이라고 불리는 승리의 문, 인도차이나 반도의 젓줄 메콩 강의 여유로움은 이 도시에서 놓쳐서는 안 될 명작들이다. 비엔티엔은 라오스 여행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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