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위를 이겨낸 캠퍼스는 신입생들의 싱싱한 기상을 등에 업고 양양한 자태로 봄기운을 불러내고 있다. 지난 겨울 우리는 예기치 않은 한랭전선의 심술로 한동안 잊었던 영하 20도에 가까운 혹한을 경험했다. 북한에도 1월 중순 이후 극심한 한파가 닥쳤다. 최저 영하 30도를 밑돈 날이 20일가량 되었고, 그중에서 가장 낮은 온도는 감자생산지로 유명한 양강도 대홍단 지방에서 1월 31일에 관측된 영하 38도였다. 강한 바람을 동반했으니 살을 에는 아픔은 훨씬 더했을 것이다. 혹한 속에서도 북한의 청년들은 ‘백두산영웅청년 3호발전소’ , ‘삼지연-혜산 철길’ , ‘세포군 축산기지’ , ‘황해남도 물길’ 등 대규모 건설현장에 ‘돌격대원’으로 차출되어 완공기일을 앞당기기 위해 ‘속도전’의 된 바람을 일으켜야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추운 겨울을 보낸 사람들은 북한의 고위간부들이었을 것이다. 최근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숙청 사건들을 통해 살벌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온화한 성품의 인사로 알려진 북한의 대남담당 비서 김양건이 ‘12월 29일 오전 6시 15분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북한의 핵심 간부들을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제거한 사례들이 드물지 않았던 터라 그의 죽음은 애초부터 미심쩍었다. 그러나 장례가 국장으로 결정되고, 김정은이 친히 문상하는 등 극진한 예우 분위기에 묻혀서 의혹은 사그라지는 듯했다. 당시 김정은은 ‘싸늘하게 식은 혁명동지’의 시신에 손을 얹고, “금시라도 이름을 부르면 눈을 뜨며 일어날 것 같다. 손이라도 한 번 따뜻하게 잡아보고 보냈으면 이다지 가슴 허비지는 않겠다.”며 격한 감정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북한에서 1월 6일의 4차 핵실험과 2월 7일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이어지고, 그 사이에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대남담당 비서에 임명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김양건이 파벌싸움에서 희생되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후임자 김영철은 1980년대 후반부터 남북대화에 관여한 북한 군부 내 대표적인 대남 전문가로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비무장지대(DMZ) 지뢰매설 등의 배후로 지목된 강경파의 상징 인물이다.

  또한 2월 초에는 북한 군부 내에서 서열 3위인 이영길 총참모장(우리의 합참의장 격)이 ‘종파와 세도, 비리’ 혐의로 처형되었다.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김정은 주재 하에 2월 2일부터 이틀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노동당 조선인민군위원회 연합회의 확대회의’라는 생소하고 긴 이름의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당 안에 남아있는 특권과 특세, 세도와 관료주의가 집중적으로 비판되었으며, 인민군대는 오직 최고사령관(김정은)이 가리키는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고 한다. 발표 내용으로 보아 이영길이 비리혐의로 강압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최고지도자에 대한 불충한 언행을 자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영길의 처형과 그 후임자(이명수)의 임명 사실이 십 여일 만에 거의 동시에 알려질 정도로 이번 결정과 집행이 신속하게 이루진 점도 살얼음 정국의 긴박감을 더해준다.

  한편 2013년 말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2년여 동안 권력서열 2위와 3위를 최용해의 처지도 좌불안석이라는 점에서는 여타의 간부들과 별 차이가 없다. 최용해는 작년 연말에 일단 복권이 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아직까지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어 김정은의 그에 대한 감정정리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 상층부의 소용돌이 정국은 북한의 오랜 부패 사슬과 이를 척결하려는 변화의 몸부림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과정으로도 해석된다. 지난 수십 년간 뇌물을 주고받는 일이 관행으로 여겨진 풍토에서 자라온 간부들을 법의 잣대로 재단할 경우 그 망을 벗어날 수 있는 대상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고, 김정은은 이 상황을 자신의 권력기반 강화와 세대교체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숙청의 화살이 언제 누구에게 향할지 모르는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국면은 5월로 예정된 노동당 제7차 대회 직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정세 못지않게 북한 내부의 움직임도 우리의 안보와 통일 환경에 중요한 변수인 만큼 면밀히 관찰하면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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