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연구윤리에 관한 규정 미비… 학문 분야별 세세한 지침도 부족해

지난해 3월 동국대학교 연구 윤리를 검증하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한태식 총장 후보의 논문 2편이 표절인 것으로 결론내리고 이사회에 중징계를 건의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한 총장 관련 징계 사안을 차기 회의로 넘기고 총장 선임 안건만통과시켜 논란이 됐다.

  지난해 8월 창원대학교에서는 일부 교수들이 최해범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창원대 교수들로 구성된 ‘연구 진실성 실천연합’ 소속의 한 교수는 “최 총장은 최근 5년 동안 연구부정을 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실천연합 교수들이 직접 표절 검증 프로그램을 돌려본 결과 10여 편이 표절로 나타났다.”며 “총장 심사를 맡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최 총장에 대한 논문을 허위 검증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논문 표절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표절 가려내는 체계적인 시스템 부재
  현재 국내엔 표절에 관한 제대로 된 지침이나 시스템이 없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 2005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이 일어난 뒤,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만들었다. 지침에는 각 연구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연구윤리진실위원회를 구성하고 연구 윤리 관련 규정을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연구윤리에 대한 기준과 지침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교원정책과 관계자는 “연구소마다 분야가 다르므로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며 “각 기관의 사정에 맞게 연구 윤리 규정을 만들어 지키도록 하는 것이 현재로썬 제일 나은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각 대학의 자체적인 규정으로 논문 표절 심의를 하다 보니 표절에 관한 공통 통계 집계도 불가능하다. 일부 국가에서는 민간 기업이 대학과 연구소의 논문을 모아 데이터베이스화해 표절을 걸러내는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논문 표절 여부를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현재 대부분의 국내 대학은 석ㆍ박사 학위 논문을 심사할 때 외부 전문가를 포함해 자체적인 심사위원회를 꾸려 표절 여부를 가린다. 위원회는 표절과 관련된 명확한 지침 없이 심사를 하기때문에 외부에서 의혹이 불거진 뒤에야 논문 표절 여부가 확인된다. 석ㆍ박사 학위 논문의 표절의혹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전혀없는 것이다.

  5년 면죄부와 연구윤리 의식 부족
  표절 논문의 검증시효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007년에 제정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 따르면 제보 접수일로부터 만 5년 이상 지난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접수하였더라도 처리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논문 검증 시효를 5년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논란이 있었던 창원대 최 총장도 논문 검증 시효가 지나 징계를 면할 수 있었다. 창원대 관계자는 “논란이 될 만한 여지가 있었지만 이미 검증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검증 시효가 사실상 연구부정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국연구재단 지정 연구윤리정보센터의 관계자는 “학계에서는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검증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이를 받아들여 규정을 개정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어 “각 대학에서도 신속하게 관련 규정의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논문 표절이 끊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 논문을 작성하는 당사자들의 연구윤리 의식 부족도 지적된다. 한국대학연구소 관계자는 “학자가 학문적 양심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표절해선 안 된다.”며 “개인의 비양심, 비도덕성이 근본적인 원인이다.”라고 전했다.

  정부와 대학가, 연구윤리 강화 방안 마련 움직임 있어
  모호한 기준과 논문 부정행위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없어 대학들이 혼란을 겪어 왔다. 이에 교육부에서는 지난해 3월부터 정책연구를 통해 연구윤리 강화를 위해 의견을 수렴하고 연구윤리 지침 개정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에 발표된 교육부의 ‘연구윤리확보를 위한 지침(교육부 훈령 제153호)’에서는 연구 활동에서 연구자의 진실성과 책임성을 강조했다. 또 연구부정행위 범위에 ‘부당한 중복게재’를 추가하며 부당한 저자표시 등 연구부정행위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였다. 교육부 고영종 학술진흥과장은 “이번 지침을 발판삼아 연구부정행위를 근원적으로 줄여 나갈 것이다.”라며 “대학의 자체 연구윤리규정에도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유도해 새로운 지침이 현장에 조속히 정착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학 자체적으로 연구윤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화여자대학교는 올해 초 총장 직속의 총괄연구윤리센터를 열었다. 이 센터는 연구진실성위원회 및 동물실험윤리위원회 등 연구윤리와 관련된 모든 기능을 갖춘 종합센터이다.

  연구 부정행위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인 지침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학교도 있다. 서울대학교 연구윤리지침에 따르면 연속된 2개 이상의 문장을 인용표시 없이 그대로 사용한 경우는 표절로 추정한다고 명시했다. 또 서울대는 연구 부정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들을 수 있는 연구윤리 정규강좌가 마련돼 있다. 학부생도 교양필수로 개설된 연구윤리 강좌를 들어야 한다. 서울대에 재학 중인 백재우(식품·동물생명공학부·14) 군은 “예전까지는 표절의 정확한 기준을 잘 몰랐지만, 연구윤리 강좌를 통해 표절의 정확한 기준과 실제 적용할 수 있는 표절판정 지침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고 말했다.

  표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인식개선 필요해
  전문가들은 표절을 예방하기 위해서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부정행위를 가려내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자가 연구윤리를 일상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학부생 때부터 연구윤리 의식 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구윤리 정규강좌가 마련된 서울대 외에도 성균관대학교는 오는 2017년부터 학부생들에게 연구윤리 강좌를 필수로 지정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인문사회 계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연구윤리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중앙대학교 신광영 교수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여기저기서 문서를 긁어와 과제를 제출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며 “인용을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윤리가 일상화되도록 각 학교 차원에서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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