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산마리노 등 작은 도시국가의 이름을 나열할 때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얼마나 큰 나라인지 실감하게 된다.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우리 민족은 동북아의 대국(大國)에 사는 주인이 될 것이다. 하물며 우리에게는 많이 낯선 투발루, 신트마르턴, 아루바와 같은 작은 나라와 비교하면 한반도는 지도상에 큰 존재감을 나타내는 장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도(首都)의 이름과 국가의 이름이 동일한 룩셈부르크도 우리에게는 작은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면적은 제주도의 1.2배 수준이고 인구는 55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나라는 무시할 수 없는 지표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1인당 GDP는 세계 1위이고, 내가 강의하는 무역경영론에도 등장하는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 아르셀로미(ArcelorMittal)의 본사가 이곳에 있다. 유럽의 다른 소강국(小强國)들이 그렇듯이 룩셈부르크도 효율적인 제도 운용을 통해 글로벌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칼 마르크스의 고향으로 유명한 트리어(Trier)를 들러 베네룩스 3국 중에서 제일 작다고 하는 국가로서의 룩셈부르크에 도착해서 도시로서의 룩셈부르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1889년에 시작되어 1903년에 완성된 아돌프 다리(Pont Adolphe)는 구시가와 신시가를 잇는 아치교이다. 주변의 강대국들이 살기 편한 평야지대를 다 차지해 버려서 그런지 이 도시는 구릉(丘陵) 지대 위에 건설된 듯하다. 아돌프 다리가 아니면 골이 깊은 계곡과 계곡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없을 것 같아 보일 정도다. 골이 깊으면 아치의 각도 더 아름답게 창조되는 것일까. 각 도시가 자랑하는 건축물로서의 다리를 많이 봤지만 아돌프 다리의 아치가 만들어 내는 곡선의 미는 ‘시선 고정’ 상태를 더 길게 유지시킨다. 이 다리를 계절별로 느끼기 위해 룩셈부르크에 계속 온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fandom’을 확보한 맵시 있는 아치교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다리의 가냘픈 곡선 위로 사람을 태운 버스가 오가는 것이 아찔해 보인다. 헌법광장(Place de la Constitution)에 도착하여 다시 조망(眺望)한 다리의 모습에 반해서 이 도시에서 1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저녁에 다시 독일로 돌아가기로 한 여행일정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나.

  산맥과 협곡은 사람들의 억양을 바꾼다.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억양을 듣는 것은 여행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기쁨 중 하나이다. 언어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독일어의 방언이라는 룩셈부르크어(Lëtzebuergesch)를 듣고 싶었는데 귀에는 독일어만 들려온다. 불어는 문외한이지만 독일어는 꽤 한다고 생각했는데 독일어와 독일어 방언의 차이를 구별할 정도의 수준은 안 되는 것 같다. 이 소국(小國)에서도 진한 사투리 억양을 듣기 위해서는 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말인지.

  원래 부자였던 사람이 더 잘 베푼다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길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는 평온하고 자동차의 속도는 어린이 보호구역을 통과하듯이 느릿느릿하고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는 지도를 그려가며 설명해 준다. 반나절 여행으로 끝내려고 했던 이 도시는 나에게 여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 주었다. 룩셈부르크는 룩셈부르크만의 ‘Look’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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