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리브 해의 온화한 바람은 플로리다 반도의 끝단에 호화로운 휴양도시를 탄생시켰다. 오대호(五大湖)의 칼바람 에 지친 미국 북동부의 부자들은 이 도 시에 별장과 요트를 사놓고 겨울 휴가 를 즐기러 먼 길을 내려온다. 1997년 동성애자 친구에게 피살된 지아니 베 르사체(Gianni Versace)의 집도 여기에 있다. 세계의 부호들은 카리브 해의 날 씨와 대도시의 안락함, 그리고 미국이 라는 나라가 주는 상대적 안정성을 즐 기기 위해 이곳을 휴양지나 인생 말년 (末年)의 정착지로 선택하는 데 주저 하지 않는다. 지금은 중국인 큰 손들이 가장 비싼 해변가의 부동산을 쇼핑하 러 몰려온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부자들은 가장 살고 싶지만 서민들은 돈이 많지 않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다 고 여겨 살기를 꺼려한다는 도시 마이 애미에 도착했다. 서민들은 꺼려하고 부자들은 좋아하는 이 상황이 현재의 미국을 대변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말에 도착한 나에게 일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말하면서 스포츠카의 열쇠를 건네주며 마음껏 도시를 둘러 보라는 파트너 회사의 배려가 고마웠 다. 어느 나라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다정하고 여유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고정관념은 아닐 듯싶다. 차의 뚜껑을 열고 이 도시의 강한 자외선과 바람을 쐬는 나. 마이애미에 감도는 바 람은 미국 서부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 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나 샌디에고 에서 맞는 바람이 태평양의 광활함을 품었다면, 이곳의 바람에는 카리브 해 의 정열을 넘어 아픔마저 담겨있다. 스 페인, 프랑스, 미국은 원주민을 학살하 고 서로 플로리다 반도를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였다.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 들은 카리브 해에 산재한 섬들로 배정 되어 노동을 착취당하며 죽어갔으며, 그 후손들은 지금도 극빈(極貧)의 생 활을 하고 있다. 차 안의 몸은 편했지 만 아픔의 역사를 생각하니 마음은 무 거워졌다.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대통 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한 바 있지만, 쿠바, 자메이카, 아이티 등 과 같이 빈곤, 자연재앙, 인권 유린의 고통 속에 허덕이는 인근국가의 사람 들에게 마이애미는 천국이나 별천지 에 가깝다. 국가와 국가의 등급, 도시 와 도시의 차이는 새로운 권력을 형성 하며 질서 있는 순위 매김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같다. 그 누가 마이애미를 쿠바의 하바나, 아이티의 포르토프랭 스와 비교하려고 할까.

  마이애미에서 굳이 관광명소를 찾 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타 이타닉 호처럼 생긴 거대한 크루즈 선, 부호들의 럭셔리 카와 별장, 노천 에서 마시는 상그리아 한잔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비키니 미녀들의 모 습, 그리고 공짜로 탑승할 수 있는 도 심의 모노레일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지기 때문이다. 마이애미는 미국 대 륙과 라틴 문화를 잇는 가교(架橋)다. 미국의 최남단에서 비싼 미국의 정수 (精髓)를 느끼고 인근 카리브 해 국가 들로의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마이애미 여행을 권한다. 카리브 해 를 삼켜 버리려는 호화로움 뒤에 숨 은 역사의 아픔마저 의미 있게 다가 올 것이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