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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죤은 323일 보도시간에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에서 생산하여 남포항을 출발한 백두산영웅청년3호발전소설비가 청진항을 거쳐 321일 건설현장에 도착하였.”고 하면서 발전설비를 트럭에 싣고 운반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 장비는 315일에 남포항을 출발한 것으로 보도된 바로 그 물건들이었다. 참고로 대안중기계는 남포에 자리 잡은 북한의 대표적인 중장비 생산 공장이고, ‘백두산3호발전소는 작년 10월 김정은의 명령에 따라 시작되어 금년 5월 노동당 제7차 대회 이전에 완공할 목표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수력발전소이다. 발전소의 이름에 붙은 영웅청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공사는 북한 전역에서 동원된 수만 명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고 있으며, 당초의 계획을 3개월 앞당겨 마치기 위해 혹한(현재도 영하 15도 내외)의 날씨에도 쉬지 않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우리의 개념상 육로로 반나절이면 너끈히 해결될 발전설비수송 작업이었는데 배에 실려 서해와 제주도를 돌아 백두산지역까지 운반되는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총 6일이 걸렸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북한의 실상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추론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의 철도·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이 이 정도의 설비 운송 시설이 낙후하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둘째는 그러함에도 북한이 위성물체를 우주궤도에 쏴 올리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연이어 감행하고 있는데 그첨단무기 개발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점에 대한 답을 지난 18일 키 리졸브 훈련 종료에 맞춰 착공한 평양의 려명거리건설과 연관 지어 풀어 보고자 한다. ‘려명거리조성계획은 김일성종합대학 인근에 우리의 뉴 타운과 비슷한 주거 및 복지시설을 금년 내 완공목표로 건립하려는 구상이다. 이곳에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육자들을 비롯한 과학자·연구사들이 살게 될 살림집(아파트)뿐만 아니라, 공공건물들과 봉사망(서비스 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조명과 난방은 태양광과 지열 등으로 해결하고, 건물 옥상에 온실을 설치하는 등 21세기에 맞는 에너지 절약형 거리·녹색형 거리를 만든다고 한다.

   북한이 과학을 중시해 온 정책의 뿌리는 깊지만 이른바 고난의 행군종료시점인 1990년대 후반에 과학기술사상’, ‘총대(군사력)’와 함께 강성대국 건설의 3대기둥중의 하나로 내걸면서부터 더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과학자들에 대한 획기적인 우대정책, 구체적으로는 그들에게 신축 아파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3년에는 은하과학자거리, 2014년에는 위성과학자거리, 2015년에는 미래과학자거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주거단지를 건설하여 과학자들을 순차적으로 입주시키고 있다. 이번에 착수한 려명거리는 과학자들을 위한 배려시설의 ‘2016년도 판인 셈이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월 임금이 200달러 미만인 북한의 실정을 고려할 때 10만 달러를 호가하는 아파트를 제공하는 조치는 가히 파격적이다. 그 배경에는 북한의 최우선 과제인 체제의 안전보장과 경제회생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우선 북한은 예산이 뒷받침되지않아 재래식 군비경쟁으로는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구조적인 경제난 속에서 SOC나 중후 장대한 산업에 대한 신규투자를 통해 경제회생을 꾀할 수도 없다. 이로 볼 때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고 우수한 인적자원에 힘입어 추진할 수 있는 과학기술중시 정책은 북한의 처지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아울러 가시적인 성과달성을 위해 충성심에 호소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적 시스템의 전형인 대규모 물질적 인센티브로 사기를 진작시키는 점에서도 그 절박성이 읽힌다

  북한의 드라마나 영화에 과학자들이 몇 달 동안 귀가하지 않고 연구현장에서 숙식하면서 기술개발에 몰두하는 모습이 자주 묘사되는 점에서도 이 시책이 무엇을 겨냥하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업종이 유사한 전문가들이 같은 단지에 거주토록 함으로써 퇴근 후에도 회의나 토론 등을 하면서 연구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부수적인 노림수도 담겨 있다.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에 대한 기술진전이 외부의 예측을 앞서고 있는 데는 이러한 요인들도 작용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수령과 세습체제를 위해 개인의 행복은 물론 목숨까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구에 내몰리는 북한과학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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