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것조차 재미있다는 시험 기간, 가슴은 시간이 없다며 조급함을 호소하지만 처음부터 머리의 지시를 받아온 몸은 그 말을 들을 리 없다. 잡다한 생각들이 가득한 머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끌리는 것부터 하자는 생각만이 몸을 지배한다. 손은 휴대폰으로 향하고, SNS를 실행시키는 과정은 자연스럽다 못해 인식할 거리도 되지 못한다. SNS 첫 페이지는 두어 번은 더 읽은 내용이고, 초 단위 내지 분 단위로 누르는 ‘새로고침’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오늘은 ‘새로고침’은 눌러보지도 못하고 공부해야 할 듯싶다. SNS 첫 페이지에서 접한 게시물이 적잖은 혼란과 생각할 여유를 주었으니 말이다. 게시물을 요약하자면, 4월 20일 오전 10시 30분 문화 채플의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성대모사 및 개그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와 함께 그가 생을 마치던 마지막 순간을 개그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성향을 떠나 상식적으로 채플 시간에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해당 사회자와 채플을 주관하는 교목실을 향한 비판이 일었다. 해당 사회자와 주관 측인 교목실을 향해 무조건 비난만 하는 대신 이번 사태를 날카롭게 인식하고 민감하게 반응한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것에 대한 감탄이 든다. 그리고 나 또한 저들과 같은 입장임을 미리 밝혀둔다. 

  정치적 성향, 상식의 선 혹은 기준에 앞서 우리는 일상에서 생명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지 못한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동사 ‘죽다’를 다양한 형태로 변형하여 사용하는 농담을 서슴지 않는다. 말은 씨가 된다고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말은 행동의 씨가 되지만 사회적으로는 문화를 형성한다. 이번 논란을 생각하며 지식인인 우리 대학생들은 문제의 근원을 언어습관과도 연관 지어 고민해 봄으로써 교양인이 될 수 있는 언어습관이란 무엇인지 의문을 품을 필요성을 제안해 본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