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인 물리학과 감성적인 예술그리고 ‘70도전’. 이들은 서로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소화해낸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본교 고재귀 명예교수다. “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도전이 쉬운 사람은 없겠지만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며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세요.” 고 교수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워하고, 고민할 시간에 결실을 맺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한다. 지금도 고 교수는 화가로서 제2의 인생을 그려나가는 중이다. 늦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도전하기를 즐기는 고재귀 명예교수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처음 물리학 교수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섬에서 태어났어요. 제 고향에서 서울은 10시간이 넘게 걸릴 만큼 먼 곳이었어요. 저는 그곳에서 자연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한 꿈은 없었어요. 그 대신 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물리학을 가장 잘했어요. 매번 시험을 볼 때마다 거의 100점을 맞았죠. 물리학교수가 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성적이 제일 잘 나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물리학을 선택하게 됐어요.

 

교수님이 중점적으로 연구하신 분야와 가르치셨던 분야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저는 물리학의 기초인 순수물리보다는 주로 응용물리 분야를 연구해왔어요. 그중에서도 자성재료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자성재료는 전자제품에 주로 사용되며 자기적 성질을 띠는 물질을 말하는데, 더 쉽게 설명하면 자기적 성질이란 우리가 흔히 아는 자석이 갖는 특유의 물리적인 성질을 말해요.

  저는 자성재료학 전공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정년퇴임을 한 후에는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생활과학이란 과목과 물리학 재수강 반을 가르쳤어요. 재수강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조금 힘들긴 하지만, 어떤 학생은 수강했던 과목 중 가장 좋았다고 이야기해줄 만큼 수업에 대한 평가가 좋아서 매우 뿌듯해요.

  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최대한 즐겁게 진행 하려고 노력해요. 물리학 재수강 반에서는 기말시험에서 100점을 받은 학생들을 위해 직접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죠. 그래서 시험을 볼 때 마다 얘들아,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100점 맞아야한다.”며 학생들을 격려하곤 했어요. 지금까지의 학교생활을 되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을 해왔던 것 같아요. 한창 열심히 연구하던 시절에는 자정 이전에 집에 간 적이 없었어요. 힘들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2011년도 정년퇴임 후 본교 평생교육과정 성악과에서 공부하셨는데, 특별히 성악을 공부하게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고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실기시험을 본 적이 있었어요. 실기시험은 교실 앞에 나가 선생님과 반 학생들 앞에서 한 명씩 노래를 부르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여러 학생이 노래를 부르고 제 차례가 되어 노래를 부르는데 음악 선생님이 노래를 너무 잘한다며 깜짝 놀라셨었어요. 그때는 잘 몰랐지만, 본격적으로 성악 공부를 하면서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본격적으로 노래를 배울 때는 주위 사람들이 저의 노래를 듣고는 하늘에서 내려온 목소리라고 했어요. 그만큼 타고난 목소리가 좋았다고 생각해요. (웃음)

  사실 이렇게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알게 된 것도 우연이었어요. 2005년에 YTN에서 개최한 정오의 콘서트에 숭실 윈드 오케스트라와 교수 중창단이 무대에 올라갈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교수 중창단이 사정상 공연을 못하게 됐어요. 어쩌다 보니 교수중창단 대신에 제가 독창을 하게 됐고, 그 이후에 정식으로 성악 공부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 뒤로 성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죠.

 

성악을 배우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성악을 시작했기 때문에 공부하는 내내 한계에 부딪혔던 적이 많았어요. 그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청음이었어요. 청음은 멜로디를 귀로 듣고 그 음을 악보에 그대로 받아쓰는 것을 말해요. 그런데 저는 항상 성악 선생님이 들려주는 음을 정확하게 받아 적지 못해 점수를 잘 받지 못했어요.

  그래도 화성학은 다른 학생들보다 월등하게 잘했어요. 화성학은 음악 속에서 화음을 구성하고 있는 음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배우는 분야예요. 화성학을 남들보다 잘한 이유는 제 전공인 물리학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물리학은 사물이 어떤 원자나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지 연구하는 학문인데, 화성학도 그와 비슷하게 어떤 음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고민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비슷한 부분이 많죠. 그래서 작곡의 기본인 화성학을 좀 더 쉽게 공부할 수 있었어요.

 

성악을 하는 데 있어 어떤 능력이 중요할까요? 또한,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과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성악은 타고난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여러 번 반복하고 부족한 부분을 계속 연습해야 발성법이나 기술이 늘거든요. 아마도 제가 어렸을 때부터 성악을 했다면, 오랜기간 연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잘했을 거예요.

  그리고 연습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무대에서 긴장하면 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거든요. 저는 다행히 다른 사람들보다 긴장하지 않고 무대에서 편하게 노래했던 것 같아요. 무대에 서기 전에 다른 사람들처럼 긴장되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서서 노래의 반주가 시작되면 마음이 편해져서 잘 부를 수 있었죠. 덕분에 큰 무대에 여러 번 설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 20회 정도 독창회를 열었고, 이 외에도 각종 단체에서 종종 노래를 불렀어요. 개인 전시회를 하실 만큼 미술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것 같아요.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는 일에 관심을 가졌고, 본격적으로 화가로 나서게 됐는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그림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학교에서 개최한 그림 그리기 대회에 4학년 대표로 나가서 입선을 하게 됐어요. 그 뒤로 미술 실력을 인정받아 대회에 자주 출전하게 됐는데, 점점 대회에 나가기가 싫더라고요. 왜 그랬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놀고 싶은 어린 마음에 그랬던 것 같아요. 한 번은 그림 대회에 반 대표로 출전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거절했다가 야구 방망이로 엉덩이를 맞았던 기억이 있어요.

  초등학교 이후엔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그러다 제 딸이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그 덕분에 미술 전시회에 참석할 기회가 종종 있었어요. 이를 계기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정년퇴임 1년 전부터 미술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죠. 지금까지 단체전 출품도 6번 정도 했고, 본교 학생회관에 있는 스윙 갤러리에서 개인 전시회를 열었어요.

 

2014년도에 본교 스윙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20149월쯤부터 심장질환을 앓았어요. 강의하러 가다가 쓰러질 만큼 몸이 굉장히 안 좋았는데, 그때 내가 죽기 전에 지금까지 그린 작품들을 한 번 모아서 전시회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개인 전시회를 열게 됐어요.

 

첫 개인전시회를 스스로 평가해 본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는 5년 정도 됐어요. 저는 보통 대상을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사실주의 느낌의 그림을 많이 그려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대상을 그대로 그리는 것보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자신만의 느낌을 살려 그림을 그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소나무로 사람의 인생을 표현하기도 하고, 그림에 자신의 감정을 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요. 저도 이렇게 새로운 형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저는 아직 부족해서 그 경지까지 도달하지 못했어요.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교수님께서는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저는 항상 바쁘게 살고 있어요. 일주일 중에 이틀은 강의하기 위해 학교에 오고, 하루는 그림을 그리고, 하루는 노래하고, 그리고 하루나 이틀은 서울 근교에 농사를 지으러 가요.

  사실 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좋은 풍경이나 소재를 찾으러 다녀야 하는데 바쁜 일정 때문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해요. 그래서 저는 주로 제 주변에서 소재들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평소에 일하면서도 그림 소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요. 주변에서 찾은 소재로 그린 그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우리 학교 캠퍼스에 있는 분수대를 그린 그림이에요. 이 그림도 학교에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풍경으로 기억해 두고 사진을 찍어놨다가 시간 날 때 그린 그림이죠. 지금 제가 가져온 작품들인 가을의 향연심산유곡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완성된 작품들이에요.

 

늦은 나이에 성악과 미술을 시작하셨어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저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두려워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죠. 성악과 미술 외에도 본교 경영대학원에서 바리스타 과정을 공부했어요.

  또한, 저는 항상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요. 서울 근교에 제 농장이 있는데, 그곳에 제 미술작품과 다른 사람들의 미술작품을 합쳐 약 200점 정도가 있어요. 그래서 그곳에 작품들을 전시할 미술관을 세우고, 그 옆에서 제가 만든 커피와 빵을 판매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현실적인 여러 제약이 있어서 실행하기가 쉽지 않지만 언젠간 이루고 싶은 꿈이에요.

 

인생 선배로서 아직 인생의 전환점을 기다리는 학생들과 새로운 도전을 앞둔 많은 인생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저는 이미 정년퇴임을 했기 때문에 원래 이 인터뷰가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안 하려고 했어요. 그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저의 인생얘기가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기로 했어요.

  학생들은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정말 열심히 해야 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볼 때 터무니없는 꿈일지라도 그 꿈을 실행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그게 자신에게 큰 꿈이 될 수 있거든요. 저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는데, 대학 시절에 내가 어른이 되면 고려대학교만큼 큰 대학을 세우고 싶다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꿈이었죠. 그러나 제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런 꿈들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터무니없는 꿈일지라도 어떻게든 결실을 맺기 위해 항상 노력했거든요. 그러니 학생들은 터무니없는 꿈이더라도큰 꿈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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