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목), <살아있는 구간>으로 박영근 작품상을 수상하고 <슬픔을 말리다>로 가톨릭 문학상을 받은 박승민(불어불문·84) 시인을 명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박 시인은 “묵직하고 가슴 깊이서 울림을 주는 무게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시인답게 깊고 진지한 눈망울을 가졌다. 이 시인의 이야기를 본지에 담아봤다. 

어렸을 적부터 글 쓰는 일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세계명작 전집’이라는 소설책을 많이 읽었어요. 계속 소설을 읽다 보니 글 쓰는 일에 관심이 생겼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시인이라는 꿈을 가졌죠. 특히 그때는 시인이라고 하면 엄청 멋있어 보였거든요. 그렇게 막연하게 시인을 꿈꾸다가 고등학교 때 교내 백일장에서 입상한 뒤에 시인이 되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죠.

  저의 꿈은 시인이었기 때문에 국문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숭실대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그래서 전공인 불어불문학과 수업보다는 국어국문학과 전공을 더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대학 시절 ‘다형문학회’라는 학교동아리에서 활동을 했어요. 다형문학회에서는 문학도 배우고 좋은 선배들도 많이 만났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다형문학회에서 한 활동들이 제게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시인이 있으신지? 그리고 그 시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김수영 시인을 가장 좋아해요. 고등학교 때 우연히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뿔>이라는 시집을 접하게 됐어요. 그때는 그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시가 좋아서 읽었는데, 나중에 그 시인에 대해서 알아보니 대단한 시인이더라고요.

  그분의 시에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시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어요. 이런 점들은 본받을 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또한, 문학은 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지요.

 

2011년에 <지붕의 등뼈>라는 첫 시집을 내셨는데 간단하게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20대부터 40대 때까지 시를 쓰면서 겪은 삶의 고난들과 삶에 대한 고민이 모여 있는 시집이라요. 이 시집은 저의 삶과 생각들을 반영한 시집이라 그런지 개인적인 것들이 집중돼 있어요. 그리고 <지붕의 등뼈>는 제가 발간한 첫 시집이다 보니 미숙한 면도 종종 있어요.

  시집의 이름은 시집에 수록된 <지붕의 등뼈> 라는 시에서 따왔어요. 낡은 기와집이 오래되면 지붕이 U자로 굽는데, 그 모습이 지붕의 등뼈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낡은 기와장은 어머니의 갈비뼈 같았고요. <지붕의 등뼈>라는 시는 그런 위태로운 지붕 아래에서 우리가 비를 피하는 것처럼 어머니가 우리의 지붕이 되어 주셨다는 내용이에요.

 

2011년 첫 시집 이후로 5년 만에 <슬픔을 말리다>라는 시집을 발간하셨어요. 5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쓰신 만큼 <지붕의 등뼈>와 다른 점도 많을 것 같아요.

  처음 발간한 시집 <지붕의 등뼈>와 이번 <슬픔을 말리다>의 공통점은 슬픔을 노래한 시집이라는 거예요. 물론 차이점도 있어요. <지붕의 등뼈>는 시집을 발간할 당시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슬픔에 오롯이 집중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슬픔을 말리다> 시집은 개인적인 슬픔을 넘어 세월호 참사처럼 사회적인 슬픔과 개인적인 슬픔을 연결하려고 했어요. 사회적인 슬픔이 곧 개인적인 슬픔이고 개인적인 슬픔이 곧 사회적인 슬픔이라는 이야기죠.

  이 <슬픔을 말리다>의 ‘말리다’라는 단어가 ‘Dry’의 뜻처럼 슬픔이 자연스럽게 ‘마르다’라는 뜻도 있지만, 이중적으로 우리가 싸움을 ‘말리다’와 같이 어떤 상황을 중재하는 뜻도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슬픈 일이 일어났을 때 슬픔을 말리는 작업도 필요하고, 보다 적극적으로는 스스로가 싸움을 말리듯이 슬픔을 적극적으로 말려야 살 수 있는 척박한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시를 썼어요.

 

그렇다면 아무리 말리려고 해도 말려지지 않는 근원적인 슬픔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요즘 젊은이들은 ‘3포 세대’, ‘4포 세대’를 넘어서 ‘다포 세대’라고 표현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 처해 있어요. 기성세대도 그렇고요.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을 벌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 들이 정말 많아요. 노동력과 시간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도 팔아야 해요. 심할 때는 자신의 자존심까지도 팔아야 하죠. 이런 상황들이 너무 슬프지만 우리는 스스로 억누르고 이겨내야 해요.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들한테는 이런 과정들이 근원적인 슬픔이라고 생각해요.

  삶은 개인적인 슬픔을 이겨내는 과정인데 거기에다 사회적인 슬픔까지 연결될 때가 있어요. 우리는 그때마다 슬픔 가운데서 ‘사람은 본래 슬픈 존재구나.’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해요. 모르고 슬퍼하는 것하고, 의식하면서 슬퍼하는 것은 분명 다르니까요. 슬픔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원인을 고치려 할 것이에요. 근본적인 슬픔은 몰라도 사회 체제적인 슬픔은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살아있는 구간>이라는 시를 통해서 박영근 작품상도 타셨고, <슬픔을 말리다>로 가톨릭 문학상 신인상을 받으셨어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제 입으로 말하기 어렵죠(웃음). 그래도 굳이 말해보자면 슬픔이라는 감정을 개인적인 부분을 초월해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폭넓게 연결함으로써 이것들을 잘 표현했기에 좋게 봐주 신 것 같아요.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시고 시를 쓰시는지 궁금해요,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시라는 건 마치 무당이 신 내림을 받는 것처럼, 교회에서 말하는 ‘방언’이 나오는 것처럼 술술 나와야 해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쓰는 시는 별로 좋은 시가 아니에요.

  좋은 시는 어느 날 갑자기 가슴에 차올라서 자기도 모르게 막 튀어나와야 하죠. 그런데 사실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시가 잘 나오지 않을때가 많은데, 저는 그럴 때마다 시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요. 책을 읽거나 여행을 가거나 해서 시가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죠. 그러고 나서 이제 시의 뼈대가 나오면 그 뼈대에 살을 붙이고 수정을 거듭해요.

 

학생들은 수능이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서 시를 배우다 보니 시인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시를 해석하기도 해요. 시인으로서 이런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험은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에요. 그렇다 보니 시 해석을 5개의 오지선다형으로 축약하고 답을 찾아내게 하죠. 그러나 시라는 것은사람에 따라 수백, 수천가지 이상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인의 의도와 정확히 맞을 수가 없어요. 이런 부분에서는 시인으로서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인이 시를 쓰면서 행동하지 않으면 그것을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말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많은 시가 사회 참여적이에요. 또한, 시인은 사회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요. 다만 시인이 직접 사회 운동에 참여하느냐, 아니면 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생각을 풀어놓느냐 하는 차이가 있어요. 80년대에는 시인들이 실제로 사회참여를 했어요. 반면 지금 시대의 시인들은 사회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적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인들은 작품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작가님께서 시를 쓸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저는 개인적인 고민에서 출발해서 사회 현실과 연관되는 시를 쓰고 싶어요. 그렇지만 기존에 보지 못했던 좀 더 색다른 내용과 형식을 가진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또한, 시의 시 언어들이 묵직하고 가슴 깊이서 울림을 주는 무게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저는 계속해서 개인적인 어떤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사회와 연관되는 시를 쓰고 싶어요. 그렇지만 기존에 보지 못했던 좀 더 색다른 내용과 형식을 가진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또한, 시 안에 들어있는 시 언어들이 묵직하고 가슴 깊이서 울림을 주는 무게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시인을 꿈꾸는 숭실대학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시인으로서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아요. 그래서 아마 시인을 꿈꾸는 많은 친구들이 경제적인이유로 시인의 삶을 포기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본인이 좋아하는 시를 가까이 뒀으면 좋겠어요.


  저는 시를 쓰다가 중간에 생계문제 때문에 30대부터 국어학원을 하면서 잠시 그 꿈을 유보했어요. 그러다 40대가 되고 경제적인 문제가 안정되면서 다시 시인의 꿈을 펼치기 시작했어요. 저는 국어학원을 하면서도 계속 책도 읽고 시도 쓰면서 시인의 꿈을 놓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거든요.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기회가 되면 항상 그 꿈으로 언제든지 갈 수 있게 계속 그 주위를 맴돌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숭실대 후배들은 하고 싶은건 하면서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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