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BBC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50곳을 선정했는데 이 도시를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인구가 13천명에 불과한 이 도시에 몰려드는 연간관광객 수는 13십만 명에 이른다. 상주(常住)인구의 백배에 달하는 외부인들이 찾는 도시가 전 세계에 과연 몇 개나 될지 의아할 뿐이다. 여행을 하면서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도시별로 각기 다른 통계 자료에 집착하게 되었는데, 빨리 근처의 피씨방에라도 들어가서 자료를 검색해 보고 싶었다. 물론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 나의 말릴 수 없는 조바심이었다. 여행도 오래 많이 하면 미세하지만 의미 있는 정신질환을 수반하는데, 나는 이것을 직업적여행병이라고 규정한다. 여행이 직업이 아니라서 직업병은 아니지만 마치직업처럼 느껴지는 여행 중의 정신 질환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여행수필<먼 북소리>에서 스스로를 상주적 여행자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거처나 고향이 아닌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을 그는 그런 용어를 사용하여 묘사했다. 아마 이곳에는 이곳이 너무 좋은 나머지 떠나지 못하고 상주하게 된 사람들이 많으리라. 호주에도, 남아공과 싱가포르에도 이 도시의 이름과 똑같은 동네가 있지만 내가 소개하려는 곳은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한 여왕의 도시 퀸스타운(Queenstown)이다. 북섬을 대표하는 도시 오클랜드의 감동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남섬의 퀸스타운은 나에게 상주를 넘어 이민을 꿈꾸게 만들어 버렸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극찬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내가 이 도시에서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기를 바랐다.

 

   올해로 만 90세가 되었어도 아직도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고 있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3년 대관식을 마치고 영연방 국가들을 차례로 순방하였는데, 와카티푸 호수(LakeWakatipu)가 있는 이 작은 마을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와카티푸는 마오리족의 말로 비취 호수라는 뜻이라고 하니 여왕은 역시 보는 눈이 있는가 보다. 여왕의 발자취는 역사가 되었고 아름다운 도시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촬영지가 되어 그 명성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해발 23백 미터가 넘는 리마커블(Remarkable)산의 청정한 공기는 도시의 모든 것을 신선하게 보존한다. 뉴질랜드의 국조(國鳥) 키위 새가 스스로의 날개를 퇴화시켜버리고 날지 않는 이유는 드높은 하늘을 날지 않아도 땅에서도 얼마든지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퀸스타운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가 볼 필요가 있는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 협만(峽灣)을 경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웬일인지 하늘에 새가 보이지 않았다. 날지 않는 새들만이 사연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뿐이다.

   남태평양의 신선한 공기와 여왕마저 감탄했던 마을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에게 퀸스타운 여행을 권한다. 인간 문명의 헛된 화려함은 대자연 속에서 키위 새의 날개처럼 소멸해감을 목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도시의 신선(神仙)은 신선(新鮮)함을 내뿜으며 도시를 감싼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