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은 임용시험을 준비해야 하고, 배우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오디션을 준비한다. 그렇다면 번역가를 꿈꾸는 학생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감이 잘 오지 않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대개 번역가라는 직업을 낯설게 느낀다. 지난 12일(목), 본교 미래관에서 번역가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박종대 번역가의 강연이 열렸다. 지금부터 박종대 번역가의 진심 어린 조언을 들어 보자!

 

번역은 자국의 문화를 만든다

  번역은 단순히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이 아니에요. 다른 국가의 문화를 우리의 정서에 맞게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자국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에요. 

  우리나라의 번역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영향이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어요. 일본은 1871년 메이지 유신 당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서 국가 직속 번역청을 만들어요. 번역청은 일부 사람들을 선정해 서양으로 유학 보내고 서양의 다양한 서적들을 일본으로 들여와 번역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일본인들은 서양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돼요. 예를 들어 ‘society’라는 단어는 서양에서 ‘계약적인 공동체’라는 의미로 사용돼 왔지만 동양에는 본래 사회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들이 ‘society’를 일본의 정서에 맞게 ‘사회’라는 말로 정착시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이처럼 번역하는 과정에서 타국의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로 녹이려면 오랜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야 해요. 바로 이 시행착오와 고민의 과정이 일본의 문화적 뿌리를 탄탄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번역본을 그대로 받아 적는 방식으로 번역을 시작했어요. 일본의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니 문화적 뿌리가 허술하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어요. 물론 우리나라에도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번역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문화의 주체성은 아직은 많이 부족해요.

 

번역이란 문화를 옮기는 작업이다!

  번역은 단어나 문장을 기계적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국가의 언어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색채를 자국의 방식으로 옮기는 것이에요. 즉 번역은 ‘문화를 옮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있죠. 심지어 연인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서로의 말 때문에 오해가 쌓이는 경우가 많아요. 이처럼 언어는 자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표현해내지 못해요. 같은 한국말을 사용하는데도 오해가 생기는데 다른 나라의 언어를 번역하는 일은 어떻겠어요? 그래서 번역은 언어의 불완전함을 수용하여 인간과 인간, 문화와 문화를 연결시켜 주는 교량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해요.

  그러나 이러한 언어의 불완점함으로 인해 생기는 오해가 창조의 여지를 만들기도 해요. 독일의 인문학자인 괴테와 실러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곤 했는데 그 둘은 서로 굉장히 다른 성향을 지녔어요.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편지를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했고 그것은 생각보다 매우 생산적인 결과를 낳았어요. 바로 이 오해가 자기 스스로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했거든요. 이러한 오해를 생산적인 오해, 그리고 행복한 오해라고 할 수 있죠.

 

번역가가 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할까?

  우선 번역가는 외국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여러분은 번역된 책을 읽다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에서 흐름이 끊긴 적이 있을 거예요. 그때마다 여러분은 ‘내 수준이 낮아서 이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라고 생각하거나 ‘이 책의 저자가 원래 이렇게 썼겠지.’라며 쉽게 넘겨버리곤 하겠죠.

  그러나 이는 번역자가 그 텍스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에요. 그럴 때마다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독자나 저자의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곤 하죠. 만약 번역자가 그 텍스트를 완벽하게 이해했다면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텍스트를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에요.

  다음으로 번역가는 논리력을 갖추어야 해요. 여기서 논리력은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문맥과 문맥을 제대로 파악해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세 번째로 책을 번역하려면 책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물리학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은 물리학 관련 서적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요. 이처럼 어떤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읽는 것과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주로 인문분야의 소설을 번역하는데 폭넓은 지식을 쌓아 놓는 것이 번역 작업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곤 했죠.

  마지막으로 번역가는 모국어를 잘 해야 해요. 간혹 번역가들은 자신들이 텍스트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번역가만 웃고 독자는 웃을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죠. 이는 번역가가 그 텍스트에 담긴 유머나 느낌을 한국어로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저 역시 가끔 표현의 한계로 원본의 느낌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할 때가 있어요. 저는 이런 약점을 한국 문학작품들을 읽으면서 보완해 가요. 문학작품 속에서 제가 평소 잘 쓰지 않는 단어나 문장들을 찾아서 적어 놓고 제 번역 작업에 생기를 불어넣죠.

 

번역가가 되기 위한 방법!

  번역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해요. 먼저 ‘번역원’이라는 사설기관에서 수업을 듣는 방법이 있어요. 그곳에서는 학생들에게 자체적으로 3개월 정도 번역 관련 수업을 수강하게 한 후 번역원 나름의 자격증을 수여해요.

  마지막으로 한국 출판사들과 다른 나라의 출판사들을 연결해 주는 에이전트를 통해 번역 일을 받는 방법이 있어요. 에이전트는 다른 나라의 책들에 대해 간단한 리뷰를 써서 출판사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요. 출판사들은 그 리뷰를 보고 적합한 책을 선정해요. 그리고 그 책을 번역하여 출판하죠. 그런데 가끔 에이전트에서 책의 리뷰를 외부에 요청하는 경우가 있어요. 만약 여러분이 에이전시에게 반복해서 연락한다면 에이전시들로부터 답이 오는 날이 있을 거예요. 옛말 중에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이 있듯이 번역 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책의 리뷰를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아요.

  앞에서 소개했던 방법들을 제외하면 여러분이 여러 가지 책에 대한 리뷰를 써서 ‘이 책을 번역해 보고 싶다’고 출판사에 의뢰하는 방법이 있어요. 자신에 대한 홍보를 직접 하는 거죠. 저 같은 경우에는 ‘이 책이 과연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이 책의 관점이 새로운 것인지’, 마지막으로 ‘이 책이 대중적인 문체로 구성되어 있는지’라는 3가지 기준에 따라 책을 선정해요.

 

만일 내가 번역가가 된다면 ?

  번역가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아요. 제가 눈을 뜨는 시간이 하루의 시작이고 눈을 감는 시간이 하루의 끝이죠. 남들 일할 때 놀 수 있고 제가 원하는 날이 달력의 빨간 날이 될 수 있어요.

  현대사회에서 인간을 통제하는 방법은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는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스템에 얽매여서 살아가게 돼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시간표에 맞춰서 강의를 듣고, 어느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획이 짜여 있잖아요.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번역가로서 주체적으로 시간을 쓰면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어요.

  또한 번역가는 번역을 할 때마다 새로운 인물과 정신을 만날 수 있어요. 작가가 몇 년 동안 고민해서 썼던 책들을 제가 3개월 동안 해부해 가면서 읽고 있으니 얼마나 새롭겠습니까? 이 자체로 공부가 되는 거죠.

  마지막으로 번역가는 자신의 체력이 다할 때까지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퇴직 걱정을 할 때 번역가는 편안하게 자신만의 커리어를 계속 쌓아나갈 수 있어요.

  대신 번역가는 가난한 직업이에요. 출판시장이 열악해 번역료가 잘 오르지 않아요. 그래서 수입이 매우 적죠. 또한 번역시장이 출판시장에서 절반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번역가들에 대한 대우는 그다지 좋지 않아요. 게다가 번역가로서 자리 잡기까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려요.

  저는 번역가로 자리 잡기까지 5년이 걸렸어요. 저는 그 시간 동안 경제적 압박감 속에서 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고 정말 힘들었어요. 매일 ‘내가 번역가로서 잘 할 수 있을까?’, ‘이 일을 계속 해야 할까?’ 같은 생각이 머리 속에서 끊이질 않았거든요. 하지만 모든 일은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에요. 매미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 땅 속에서 7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일은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해요. 물론 번역가라는 직업은 단점이 있지만 저는 충분히 해 볼만한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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