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취업에 대한 고민과 이성관계로 인한 고민, 학업에 대한 고민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고민들 중 가장 큰 고민은 바로 가치관에 관한 고민일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일을 해야 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지난 19일(목) 본교 백마관 318호에서 본교를 졸업한 나사렛대학교 임승안 총장의 강연이 열렸다. 임 총장은 이번 강연을 통해 청년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자신만의 가치관을 찾았는지 전해준다. 또한 현대 사회에, 그리고 이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강연자이자 인생의 선배로서 건네는 임 총장의 충고에 귀 기울여 보자! 

 

“Who are you?”, 당신은 누구입니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가 출국을 앞두고 김 전 대통령에게 “각하,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는 첫 만남에서 영어로 인사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래,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비서는 “각하께서 ‘How do you do?’라고 하시면 클린턴 대통령이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할 겁니다. 그 때 ‘Me too’라고 답하면 됩니다.”하고 답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별로 어렵지 않구먼.”하며 계속 인사말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얼마 후 김 전 대통령 일행이 백악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김 전 대통령이 미국 원수들을 처음 만났으니 떨렸던 모양이에요. ‘How do you do?’가 생각이 안 나서 “Who are you?”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누구냐고 물어보니 클린턴 대통령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그때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치 있게 “I am husband of Hillary.”라고 답을 했다고 해요. 그걸 듣고 김 전 대통령이 “Me too”라고 했다고 합니다.(웃음)

  또 다른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미국은 총 50개의 주로 이뤄져 있어요. 각각의 주에는 고유의 별명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뉴욕의 별명은 ‘Empire State’입니다. 또한 미국 중서부에 있는 미주리의 별명은 ‘Show your ID’입니다. 조금 특이하죠? 미주리가 이런 별명을 갖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개척시대에 미국의 동쪽 지역에 사는 사람이 서쪽으로 가거나, 서쪽에 사는 사람이 동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미주리를 지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미주리의 통행관은 아무나 지나가게 할 수는 없으니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 같은 ID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주리에선 항상 “Show your ID”라는 말이 들렸고, 이 말이 그대로 미주리의 별명이 됐습니다.

  이 두 이야기를 꿰뚫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Who are you?’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디에서 왔습니까? 지금 어디입니까?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끊임없이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존재를 설명하는 주요한 개념 중에는 가치관도 있습니다. 여러분께도 질문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가치관은 어떠합니까?

 

학교 도서관에서 인생의 가치관을 찾다

제가 본교에 진학하게 된 것도 가치관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 본교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제 가치관 바로 그 자체였죠. 그렇다면 이제부터 제가 어떻게 본교에 들어오게 됐는지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1952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7살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정말 힘들었던 시기였죠. 하물며 전 어머니까지 없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초등학생 시절 매년 우등상을 받았습니다. 제 친구들의 어머니들은 “승안이 봐라. 어미도 없는 것이 우등상을 받아 오는데 너는 뭐 하는 거냐?”라며 친구들을 혼냈습니다. 본의 아니게 제 친구들이 저로 인해 혼이 많이 났죠. 그땐 힘들어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이천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깡’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와 친해졌습니다. 그때 제 인생이 조금 달라졌죠. 까맣다고 해서 ‘깡’인지 깡패 같다고 해서 ‘깡’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불량한 친구였어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그 친구와 함께 지내다보니 점점 닮아가게 됐습니다. 지각하거나 숙제를 못 하면 온종일 걱정을 했던 제가 그 친구와 친해진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2, 3교시에 등교를 하고 숙제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말에 한 선교사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분은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분의 간증(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일)을 듣고 놀라게 됩니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처럼 지내면 큰일 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원래 가기로 했던 이천농업고등학교 대신 이천고등학교를 가고 싶다고 담임선생님한테 말씀드렸습니다. 담임선생님 입장에서는 매일 지각하던 불량 학생이 갑자기 공부를 하겠다니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담임선생님은 “너 같은 놈이 어떻게 공부를 해. 너는 농부가 돼서 일이나 해야 한다.”며 저를 크게 혼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맹모삼천지교’라는 옛말처럼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설득하며 ‘착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도 했습니다. 그때는 기도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지만 단순히 제게 큰 영향을 주었던 착한 선교사님처럼 되고 싶었어요. 그렇게 공부한 결과 저는 이천고등학교에 가게 됩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선교사님처럼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학을 결정할 때도 신학교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학교요람(학교를 소개하는 책자)을 보게 됐는데 알고 보니 숭실대학교 요람이었습니다. 그게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순리라면 순리이겠지요.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진리와 봉사’라는 글귀였어요. 그때 제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사춘기 소년이 예쁜 여학생을 만났을 때의 감정 같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저에게 ‘봉사’라는 단어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 학교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착하게 살고 싶다는 제 삶의 가치관과 잘 맞는 학교였기 때문이죠. 그때부터 본교의 이념은 제 삶의 가치관이 되었습니다.

 

가치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라

저는 아침에 나사렛대학교 총장실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신문을 봅니다. 오늘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나왔더라고요. ‘통계청이 밝힌 올해 4월 청년(15∼29세)의 실업률은 10.9%이다. 제조업 분야로 구조조정 태풍이 몰려오고 있고 청년 실업률은 석 달 연속 역대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지만 19대 국회에서 정부가 내놓은 노동개혁법은 폐기될 운명이다.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산업 전반에 젊은 피를 수혈하려면 임금 체계 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등을 통해 현장에서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대학 총장으로서 가장 기쁜 날은 입학식이고 가장 슬픈 날은 졸업식이에요. 직장을 구하지 못한 졸업생들이 “내일부터는 늦잠을 자기에 눈치가 보이고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고 하기도 눈치가 보입니다.”라고 저에게 말하기 때문이죠. 실업률 말고도 한국에는 재앙이라 할 정도의 저출산 문제나 외교관계 문제 등 여러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숭실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한국의 가장 큰 재앙은 다른 것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가치관 상실 시대에 고민없이 현실적 문명생활만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 일단 이기면 그 과정에서 지었던 죄도 모두 사면된다는 의식이 만연합니다. 혼돈의 시대가 바로 지금인 것 같습니다.

  이런 고민에서 비롯된 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며칠 전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을 쓴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영국 연방국가 내에서 영어로 쓴 소설 중 수상작을 선정하는,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어릴 때 육식에 관해 트라우마를 겪은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극단적인 채식을 하면서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입니다. 한 여자가 채식생활을 통해 본인의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려고 하지만 여인과 관련된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인의 삶은 폭력, 그리고 이혼으로 이어집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에는 이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치관 상실 시대에 살아가면서 그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단순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과시할까?’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인간에 대한 존엄과 사랑, 그리고 평화에 대한 갈증으로 한강 작가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고 이 책을 쓰게 된 것이지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가치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가치관을 찾기 위해 손을 뻗고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시를 읊어드리고자 합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바로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입니다. 소쩍새는 국화꽃 한 송이를 피우려고 봄부터 가을까지 소쩍소쩍 울었던 것이지요.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꽃을 피우기 위한 울음, 가치관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있을 때 여러분은 가장 멋진 젊은이이며, 밝은 탈출구를 맞이할 젊은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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