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 반도는 불상(佛像)을 모시는 사원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원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얀마를 필두로 하여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은 저마다 자국(自國)의 사원 스타일을 뽐낸다. 유럽의 도시들에서 성당과 교회가 그런 것처럼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사원이 도시의 미를 규정하고 각기 다른 사원의 역사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도시에 있는 왓 프놈(Wat Phnom) 만큼 극적인 이야기를 가진 사원도 드물 것 같다. 메콩강은 이 지역을 먹여 살리는 젖줄이기도 하지만 매년 범람 하여 사람들을 수장(水葬)시키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범람한 메콩강 위를 떠내려가는 4개의 불상을 펜(Penh) 이라는 여인이 건져내었는데, 이 불상 으로 1373년 사원을 세우고 이름을 왓 프놈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펜 여인의 고귀한 행동을 기려 도시의 이름조차 프놈펜이라고 지었다. 프놈이 캄보디아 말로 ‘언덕’이라는 뜻이니 ‘펜 여인의 언덕’이라고 번역하여도 무리는 없 어 보인다.

 고귀한 펜 여인의 도시 프놈펜에 오기 전에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아돌프 히틀러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학살자 폴 포트의 만행이었다. 뚜어슐렝 학살 박물관은 크메르 루즈 정권하의 비참한 학살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각종 고문도구와 고문의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존한 이곳은 방문자들로 하여금 인간에게 내재된 잔악성을 일깨워준다.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고문을 받으며 죽어갔다. 1975년부터 1979년 사이에 3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니 눈으로 직접 현장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상상이 안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폴 포트는 지식인을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인식하며 증오했지만 스스로도 프랑스에서 공부한 지식인이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캄보디아 제국의 영화(榮華)를 잊어가는 사람들과 알량한 지식으로 입만 나불거리며 사는 식자(識者)들이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보였다는 그의 증언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변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재자들만이 공감을 표시할 것 같다.

 그러나 학살의 기억으로만 이 도시를 바라다볼 수는 없다. 학살은 한 순간에 이루어진 참극이지만 도시는 계속 존재하며 살아남은 자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메콩강의 일몰을 바라보며 음식과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낭만적인 펍 스트리트는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추천하는 장소가 되었고, ‘프사트마이’라고 불리는 재래식 시장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서울의 광장시장과 비슷한 분위기로 거의 모든 길거리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프놈 펜 여행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아픈 기억에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프놈펜 여행을 권한다. 도시가 겪었던 아픔을 그대로 인정하지만 그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과 내전, 그리고 독재자의 광기에 지쳐버릴 만도 하지만 다시 감정을 추스르고 용기를 되찾는 것도 인간의 본성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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