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목), 제20대 총선에서 서울시 양천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황희(경제·88) 당선자를 만났다. 그는 본교를 졸업한 뒤, 김대중 총재 비서로 시작해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면서 현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까지 오로지 정치를 향해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인터뷰 중 그는 “매 순간 감동적으로 살고 싶어요. 각자의 감동이 서로에게 전달될 때 이것은 희망에 또 다른 표현이 될 수 있어요.”라며 국회의원으로서 제2의 인생을 꿈꾸었다. 지금부터 황희 당선자가 본교 후배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자.  

 

 

 언제부터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되셨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서 살았어요. 지금 목동은 부유한 동네로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안양천을 끼고 형성된 판자촌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그 많던 판자촌들이 1980년대 정부의 판자촌 철거·불량주택 개량사업에 의해 모두 철거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정부는 거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깡패들을 투입했고 그들은 주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였어요. 그때 제 친구들과 동네 이웃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큰 충격을 받았죠. 그러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제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92년도 대선 청년특위위원회에서 했던 자원봉사였어요. 92년 대선 때 민주당의 청년특위위원장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현 민주당 대표인 김민석 의원이었어요. 대학생이었던 저는 그 당시 14대 대선 김대중 후보를 지원 유세하는 청년물결 유세를 도우면서 ‘정치인’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양천구는 새누리당이 독점하다시피 해왔는데, 제20대 총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셨어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더불어민주당에게 양천구는 험지였어요. 지난 24년 동안 더불어민주당은 한 번도 그곳에 깃발을 꽂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그 흐름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어요. 양천구의 유권자들은 24년 동안 한 세력을 지지했으나 그들의 삶은 예전보다 나아지지 못했고 결국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바로 이 변화가 저를 이번 총선의 당선자로 이끌었죠. 그러나 저는 결코 이번 결과를 야당의 승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새로운 사회를 갈구하는 국민이 정치권 전체에게 주는 경고일 뿐이죠.

 또 제 공약이 상대 후보자보다 좀 더 구체적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선거 준비과정에서 전문가들과 몇 개월 정도 토론과 세미나를 진행했던 만큼 공약을 세우는 데 심혈을 기울였어요. 그리고 제가 이 지역 토박이로서 지역 내에 많은 사람과 오랫동안 관계를 형성하게 된 점도 한몫했죠.

 

 당선자님이 이번 총선에서 내세웠던 주요 공약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저의 공약은 주로 주거문제와 교통문제에 집중되어 있어요. 제가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양천구는 80년대에 정부가 최초로 대규모 공동주택단지를 세운 곳이에요. 그러나 당시에 지어졌던 공동주택단지들은 대부분 낙후되었고 목동이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점차 많은 세대가 이곳으로 몰리다 보니 교통· 환경 등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어요. 현재 양천구는 주택단지뿐만 아니라 주변의 도로나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의 재정비 역시 시급해요.

 그런데 이 대규모 공동 주택단지에는 노후· 불량주택 정비만을 목적으로 하는 ‘재건축 법’이 적용되어 있어 재개발을 할 수 없어요. 여기서 재건축과 재개발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에요. 재건축은 기존의 낡은 아파트나 연립주지구를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을 말해요. 반면 재개발은 단독주택이나 상가들이 밀집한 불량주거지에 도로나 상하수도 등 공공시설을 정비하고, 또 낡은 주택은 헐어 새로 건축하는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말해요. 재개발이 재건축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개념이죠.

 현재 양천구는 재건축보다 재개발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저는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해서 다발 성 재개발 사업을 하나로 묶은 뉴타운 법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고 이를 통해 목동을 신도시 개발의 첫 번째 모범 사례로 만들고 싶어요.

 다음으로 저는 교통문제를 전면에 내세웠어요. 목동은 도심에 대한 접근성은 높지만 도시 내에 이동성은 낮은 편이에요. 그래서 저는 도시 내에 이동성을 제고시키기 위해 노면전차 도입을 제안했죠. 노면전차는 흔히 ‘무가선 저상형 열차’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일반 도로에 깔린 레일 위를 달리는 전차라고 할 수 있어요. 노면전차는 경전철과 비교하면 건설비용도 저렴하고 노면전차의 입구가 지면과 가까워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을 하셨어요. 청와대 행정관은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그리고 청와대 행정관을 하면서 무엇을 배우고 느끼셨나요?

 청와대는 △대통령 비서실 △대통령 경호실 △국가안전보장실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대통령 비서실에 속해 있었어요. 처음 3년은 대통령 정치업무를 보좌하는 정부수석실에서 근무했고 2년은 국정홍보 및 대언론 업무를 주관하는 춘추관 보도지원비서실에 있었어요. 춘추관 보도지원비서실에서 저는 대통령 해외순방 업무를 맡았어요. 덕분에 2년 동안 50여 개국을 다녀오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죠.

 많은 분이 대통령 비서실을 전체 업무를 총괄하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곳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중요 의제를 중점적으로 수행하는 곳이에요. 물론 각 부처에도 장관을 중심으로 정책의제가 형성되어 있고 청와대에서 진행되는 수석보좌관 회의나 장· 차관 회의를 통해 각 부처의 정책의제가 보고되지만, 청와대 비서실은 오로지 대통령의 정책의제를 실현하는 데에 집중하죠.

 

 정치 활동을 하면서 당선자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사실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아무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국회의원들로부터 외면을 받기도 했죠. 그러나 그분은 계속되는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결국 국민에게 선택받게 되었어요. 노무현 대통령을 쭉 지켜봐 왔던 입장에서 그 당시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죠.

 

 당선자님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저의 롤모델은 노무현 대통령이에요.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철학과 원칙을 정확하게 고수하는 분이셨어요. 제가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대통령 기록물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대통령 초기 시절에 그분이 어떠한 현안에 대해 하셨던 말씀과 몇 년이 지난 후 그 현안에 대해 하신 말씀이 일관되더라고요. 자신의 철학을 절대 굽히지 않는 그분을 보며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그분은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회피하려 하기보다 정면돌파하려고 노력하셨어요. 자기 철학과 원칙이 선명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저는 외부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는, 나의 원칙과 소신을 올바르게 지키고 모든 상황에서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는 정치인을 진정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학교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저는 대학생들에게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숭실대학교가 사실 애매한 위치에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숭실대학교를 좋은 학교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숭실대학교를 썩 좋게 생각하지 않기도 하죠.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본 결과, 대학교의 위치가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갖고 직접 경험을 해보는 것이죠.

 그다음 저는 학생들이 선배들을 많이 사귀었으면 좋겠어요. 선배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 자신이 나중에 하게 될 고민을 미리 경험할 수 있어요. 우리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더는 삶에 대한 고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취업 후에도 인생에 대한 고민은 계속 돼요. 만약 선배들과 함께 다니면서 고민을 나누다 보면 자신의 미래를 먼저 경험할 수 있고 현실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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