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 여름방학에 학생들과 해외 교육기행을 두 번 다녀왔다. 학생서비스팀과 학생복지위원회가 주관한 ‘2016 통일시대를 대비한 하계 동유럽 교육기행’에 인솔단장으로 다녀왔으며, 금융경제학과에서 진행한 ‘글로벌금융기관 견학 및 문화체험 UCC 경진대회’에 학과장으로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를 여행했다. 모두 ‘통일과 역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폴란드, 체코,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중세 건축물과 예술품을 21세기에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고, 베를린에서는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중세 유물들이 아직까지도 복원되는 모습은 우리나라가 숭례문을 단기간에 부실 복원하는 모습과 대비되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28개 민족 4백여만 명의 인종 학살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울분과, 그리고 베를린 장벽 앞에서의 독일 통일 모습은 남북한 대결 모습과 서로 비교되었다.
동유럽 역사 기행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는 바로 우리에게 잊혀지고 있는 한민족의 오랜 역사를 접할 수 있었다. 고조선에서 고구려, 발해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역사에 속한 연해주는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연해주로 이주하면서 조선인(고려인)의 이주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전후부터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망명하여 항일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탈린 정권 하에서 17만여 명의 조선인들은 연해주에서 6,0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주 이주하여 생존을 위한 투쟁을 겪게 된다, 우수리스크의 발해성터를 갔을 때는 그야말로 부끄러운 마음뿐이었다. 그 곳은 풀로 무성할 뿐 성터라고 할 수 없었다. ‘발해는 우리의 역사이지(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의 역사로 주장하고 있음) 러시아의 역사는 아니기 때문에 발굴도 제대로 되지 않고 홀대를 받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역사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발해성터를 보면서, 일본의 역사왜곡을 보면서, 국정 국사교과서와 건국절 등 우리 내부의 역사 논쟁 등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제대로 지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신채호 선생님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셨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로 볼 때 불과 100년 전의 역사가 반복될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