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현세에 존재하는 지옥과 같다. 누군가 지옥을 그리고자 한다면 이곳에 와봐야 한다. 원칙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동물과 인간이 뒤엉켜 혼돈의 극치를 만들어 낸다. 소는 제왕처럼 느긋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아무데나 배설물을 흘려댄다. 그 사이를 오토 릭샤(Auto Ricksaw)가 경적을 울리며 오고 간다. 새장에 갇힌 조류가 울어대고 앵벌이 하는 어린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표정으로 구걸을 한다. 그리고 외국인을 노리는 치한들과 야바위꾼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들은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은 외국인 여성들에게는 불손하게 계획된 신체접촉을 시도하고, 외국인 남성에게는 은밀한 제안을 해댄다. 이런 모습은 작열하는 한낮의 햇살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이곳을 지옥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면 진짜 지옥이 울고 갈 판이다. 인도 북부 히말라야 부근에 위치한 우타르카시(Uttarkashi)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도착한 델리의 찬드니 촉(Chandni Chowk)에서 느낀 첫인상이다. 어떤 사람은 여기를 가장 인도다운 장소라고 하지만, 느끼한 인도 상인의 이상한 협상 전략에 이미 지친 나로부터 좋은 표현은 나오기 어려웠다.

  현재 인도의 종교는 단연 힌두교지만 꾸뜹 미나르(Qutub Minar)를 보면 이슬람교가 맹위를 떨쳤던 시대의 영광이 느껴진다. 인도 대륙을 호시탐탐 엿보던 이슬람 세력은 결국 델리를 정복하고 왕조를 창건했는데, 델리 정복을 기념하기 위해 술탄 꾸뜹의 이름을 딴 승전탑을 세워 올렸다. ‘미나르’는 이슬람 성전 안에 있는 탑을 의미하는 ‘미나레트(Minaret)’의 인도식 발음이라고 한다. 힌두교인들에게는 처절하게 굴욕적일 수 있는 꾸뜹 미나르에서 울려 퍼지는 코란 경전을 들어야 하는 현실이 이채롭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같으면 치욕의 역사라고 치부되며 파괴해 버릴 것 같은 존재를 보존하고 있는 것을 혼돈 속의 정돈이라고 이해해도 되는 것일까. 현지인보다 20배 더 비싼 입장료도 혼돈의 관점에서 보면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도 같지만 유쾌한 마음이 드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안 되는 것이 될 때는 혼돈이 좋을 때도 있지만, 적어도 돈을 낼 때는 정돈된 것이 좋다.

  외국인으로서 델리를 구성하는 뉴델리(New Delhi)와 올드 델리(OldDelhi)를 넘나들며 혼자 여행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어서 어쩔 수 없이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는 인도인 여행가이드를 고용했다. 그러나 그가 구사하는 한국어의 수준은 물론 델리라는 도시에 대한 지식수준이 너무 낮아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손으로 건물을 가리키며 “저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저것은 건물입니다” 라고 답하는 가이드의 태연스러움에 뒤로 넘어질 뻔 했다. 델리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몇 달 동안 한국어를 공부하고 나왔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 앞에서 할 말을 잊었다.

  모든 것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델리의 여러 곳을 볼 필요가 있다. 불결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것들이 너무 많지만 혼돈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돈이 될 수도 있다는 비논리적 사고 속에서 강박관념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이 도시는 여행하기가 참 힘들다. 하지만 힘든 것은 혼돈일까 정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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