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교회 고등부에서 만난 문종수 선생님

 

  나는 세칭 일류라고 하는 부산중, 경남고를 다녔다. 그러다보니 탁월한 실력을 갖춘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 뵐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들로부터는 지식이랄까, 문제 푸는 방법만을 배웠던 것 같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대개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일찍이 세네카는 “인생보다 어려운 예술은 없다. 다른 예술, 다른 학문에는 얼마든지 스승이 있지만”이라고 말했는지도모른다.

  그런데 어떤 인연에서인지, 인생의 멘토를 만나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 무렵, 한 학년 선배였던 최상태 형이 찾아와 “야, 내가 나가는 교회에 끝내주는 선생님이 오셨으니 같이 가자”고 꼬드겼다. 나는 흔하디 흔한 ‘전도’라 생각하고 시큰둥했는데, 하도 여러 차례 찾아와서 강권하는 바람에 친구 놈과 둘이 끌려갔다. 부산의 보수교회 고등부. 갸름한 얼굴에 따뜻하게 미소 짓는데 눈길은 꿰뚫어보는 듯한 분이 계셨다. 문종수 선생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선생님 댁으로 놀러갔다. 그리고 이내 선생님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믿음 생활의 문제, 여학생에 대한 생각, 공부와 전공에 관한 고민 등 청춘들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말씀드렸다. 문 선생님은 경기고,서울법대를 나온 엘리트 검사였고, 사모님은 경희대 음대를 나온 소프라노셨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선생님의 가정에는 믿음과 사랑과 음악이 충만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눈을 찡긋하며 홍차에 위스키 한 방울을 넣어주셨고, 피아노협주곡들을 틀어주셨다. 또 선생님이 권하셔서 읽었던 에리히 프롬의 《자유에서의 도피》, 라인홀트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등은 내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문종수 선생님은 신앙뿐 아니라 교양 특히 음악과 예술 등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인생의 깊이를 가르쳐주셨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고등부 이후에도 이어져, 대학을 다닐 때나 사회에 나와서도 가끔 찾아뵙고 어리광을 부렸다. 문 선생님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 민정수석을 지내신후, 과천과 속초에서 사시는데 몇 년 전 그때의 친구(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와 찾아뵈었던 적이 있다. 이번 추석 연휴에, 오랜만에 선생님 댁에서 삶의 가르침을 얻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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