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으로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다!
사회학으로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다!
  • 신지민 수습기자
  • 승인 2016.09.05 21:53
  • 호수 11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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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난 상처는 약을 바르면 금세 새살이 돋는다. 마음의 상처 역시 치유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바로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오는 상처다. △청년실업의 증가 △무한경쟁 강조 △극단적인 능력주의 강조라는 사회적 문제 가운데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한 강연이 지난달 31일(수) 서초구립반포도서관에서 열렸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집단과 개인, 사회학과 상처 간의 긴밀한 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사람들의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불안전한 사회에서 방황하는 모두가 김 교수의 강연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상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여러분은 평소 어떤 상황에서 상처를 받으십니까? 여러분이 받은 상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생긴 것일 수도 있고 연인과 헤어져서 생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친구와 말다툼을 하면서 생긴 상처일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오늘 여러분과 함께 다루고자 하는 ‘상처’는 사회학이라는 학문과 연관이 있습니다. 

   사실 사회학에서는 ‘상처’라는 개념을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를 개인적인 문제로 여기기 때문에 집단적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 타인과의 관계에서, 혹은 개인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일한 사회 환경 속에서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 집단적인 측면에서 상처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상처의 종류는 육체적 상처와 정신적 상처, 그리고 사회적 상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 상처와 정신적 상처는 이미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겠죠. 그렇다면 사회적 상처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1990년대부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사실 교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1997년도 외환위기가 도래하기 전에 대학생들은 딱히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대학을 졸업한 후 대부분의 학생들이 쉽게 취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매일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며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곤 합니다. 왜 학생들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야 할까요? 바로 청년실업 때문입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청년실업률은 대략 8~9%를 웃돌고 있습니다. 잠재적 청년실업률까지 포함한다면 20~25%의 청년들이 실업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죠. 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청년실업으로 인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여기서 청년실업으로 인한 불안은 정신적 상처인 동시에 사회적 상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상처가 개인적인 이유보다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죠. 즉 사회적 상처란 그 원인이 구조적인 측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회적 상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치유할 수 있습니다. 사실 청년실업과 같은 사회적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없죠. 그래서 저는 사회학자들도 ‘상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라는 포괄적인 대상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국민들이 입은 사회적 상처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처는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상처의 종류를 세 가지로 분류하듯 상처의 원인도 세 가지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먼저 개인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여기서 정체성이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마초이스트인가, 페미니스트인가?’,그리고 ‘나는 좌파인가? 우파인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곤 합니다. 연애를 할 때도 상대방에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질문하죠. 즉 우리는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에게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하며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체성의 위기는 어떻게 찾아올까요?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인간의 내면에는 자기감탄과 자기증오가 공존하는데 바로 이것이 정체성의 위기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날 아침에 거울을 보며 문득 ‘난 정말 멋진 사람이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반면 다른 날 아침, 여러분은 ‘난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애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자기감탄과 자기증오를 끝없이 반복한다면 상처를 입게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관계적 차원에서 상처의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인도에 혼자 사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고립된 환경에 놓이지 않는 이상 사회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 중에서도 협동과 경쟁, 두 가지 관계가 존재합니다. 협동과 경쟁이 함께 공존할 때 우리는 사회 속에서 안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경쟁의 원리가 협동의 원리를 압도했습니다. 현재 청소년들의 삶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은 주로 경쟁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죠. 학생들은 매일 같이 자신의 점수를 걱정하며 다른 친구들보다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무작정 앞으로 달려갑니다. 물론 대학에 입학하고 취직을 한 후에도 그들은 매번 경쟁의 순간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러한 현대사회를 ‘정원사와 사냥꾼의 사회’라는 비유로 설명합니다. ‘정원사의 사회’란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스스로의 삶을 경영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합니다. 반면 ‘사냥꾼의 사회’란 무엇일까요? 사냥감을 찾아 끝없이 움직여야 하는 사냥꾼처럼 다른 사람보다 앞서기 위해 상대방을 끊임없이 쓰러트려야만 하는 사회를 말합니다. 여기서 무서운 점은 사냥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사회는 정원사보다 사냥꾼의 사회에 가깝습니다. 경쟁의, 경쟁을 위한, 경쟁에 의한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무한 경쟁에 노출되며 크고 작은 상처들을 쌓아갑니다.

   마지막으로 구조적인 차원에서 상처의 원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불안’입니다. 10대는 대학입시를 걱정하고 20대는 청년실업을 걱정합니다. 3~40대는 구조조정으로 인해 조직에서 언제 퇴출당할지 몰라 불안하고 50대 이후가 되면 자신의 노후를 걱정하기 시작하죠. 모든 사람들은 인생 전반에 걸쳐 자신의 미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감으로부터 분노와 인간성의 상실을 경험합니다. 영국 런던 정치·경제 대학교 교수인 리처드 세넷은 인간성의 상실은 극단적인 능력주의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합니다. 극단적인 능력주의란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능력주의가 변질된 것으로, 흔히 고령자의 경험보다는 젊은 세대의 재능만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뜻합니다. 본래 미국 사회에서는 혈통보다는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능력주의가 팽배했으나 이것이 변질되어 퇴직을 앞둔 4~50대에게 “과연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방금까지 저는 여러분께 상처는 세 가지 차원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부터는 구조적 차원에서 어떻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지 말하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국가는 복지국가를 구축해야 합니다. 보통 복지국가라고 하면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을 떠올립니다. 아랍에미리트는 1인당 GDP 순위가 5위에 달하지만 사람들은 아랍에미리트를 선진국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이처럼 선진국이란 오로지 경제적 수준이 높은 국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국가들은 최종 단계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먼저 경제의 산업화를 일구었고 그것을 토대로 민주적인 정치·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그들은 사회적 약자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복지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또한 복지국가를 구축하기 위해 무작정 선진국들을 따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국가에 맞는 제도를 구축하되 다른 국가로부터 좋은 선례를 참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자신의 노력이 결과로 드러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학벌주의가 심각한 나라에 속합니다. 학벌중심 사회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불안감을 안겨줍니다. 우리는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결과가 빛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자신의 노력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우리는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 상처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의 해결방안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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