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태풍이 지나가고>는 그가 담아내는 가족 영화의 정수다. 영화는 자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 세계의 원형과 다름없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작품의 스토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시작은 납득에서부터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며 고레에다 감독은 아버지를 이해한다. 그가 결코 닮고 싶어 하지 않았던 아버지 역시 그 스스로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된 것이 아니었음을 납득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써내려간 이 한 줄의 문장은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시작이 된다.

  영화의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아버지의 인생을 반복한다. 전당포에 집 안 물품을 저당 잡히며 살았던 아버지의 삶은 도박과 경륜으로 궁핍해진 료타의 인생과 닮아있다. 한때 문학상을 받았던 소설가였지만 그는 흥신소의 사설탐정으로 살아간다. 이혼한 아내와 아들 싱고(요시자와 다이요)에게 줄 양육비조차 어렵지만 료타는 무능한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 혹여나 팔 만한 아버지의 유품이 있을지 료타는 어머니의 집으로 간다. 결국 스물네 번째 태풍이 오던 날, 료타와 아내, 싱고 그리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연립 아파트에 모인다. 정성스럽게 만든 카레 국수를 함께 먹는 모습은 잠시간 좋았던 과거를 식탁에 옮겨준다. 하지만 그뿐이다. 어머니와 료타의 노력에도 그들은 이미 해체된 가족일 뿐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 일의 연속이며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궁극적으로 죽은 아버지와 료타, 싱고, 그들 모두는 닮아 있다. 피하려고 한들 그들 의식에 자리한 기억은 그들을 하나로 묶는다. 결국 아버지의 죽음도 아내와의 이혼도 단순히 외면할 수 있는 부재가 아니다. 형태만 없을 뿐, 그 존재는 현재의 우리에게 끊임없는 영향을 미치며 이어져있다. 그렇기에 료타가 현재라는 사실을 맞이할 때, 그는 다시금 괜찮은 아버지가 되고, 새로운 시작점을 찾는다. 영화 속 대사처럼 행복이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다. 고레에다 감독의 냉철하지만 따듯한 시선은 남겨진 이들의 일상을 그저 따르며 시간을 기억한다. 결국,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맑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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