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부유한 지식인을 주된 독자로 하는 영국 잡지 <Monocle>은 이 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0위에 올린 바 있다. 일단 머릿속에 비엔나, 밴쿠버, 코펜하겐, 헬싱키 등 유럽이나 북미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 떠오른다.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서 도시 서울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순위를 바랄 수가 없고, 나의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도 10위권에 이름을 올릴 만한 도시는 없어 보인다. 넘쳐나는 쓰레기와 ‘지옥철’, 매연과 인파(人波) 앞에서 삶의 질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 아시아 도시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아홉 번째로 크다는 이 도시는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렸다. 이상하리만치 무더웠던 올해 8월의 중순, 나의 피서(避暑)지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복(福)많은 도시,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섬 규슈(九州)에 위치한 후쿠오카(福岡)였다.

  후쿠오카는 일본인이 뽑은 매력적인 지방도시 1위에 선정되었다. 녹지가 도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바다와 강이 지척의 거리에 있으며 범죄율은 일본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것만으로도 왜 그런지 이해가 된다. 국제공항이 도심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온천도시 유후인, 일본의 베니스라 불리는 야나가와, 고즈넉한 산책길이 돋보이는 다자이후가 주변에 포진해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일본 내에서 꼬치구이 점포수 1위, 닭고기 소비량 1위, 포장마차 수 1위라는 지표는 이곳이 얼마나 미식(美食)의 도시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후쿠오카의 명물로 꼽히는 명란젓은 생산량 세계 1위를 자랑한다. 2위부터 5위까지의 지표들도 참 많지만 딱히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 도시의 매력을 나타내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모 방송국의 인기 ‘먹방 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집이 아니더라도, 가이드북에서 별 다섯 개를 받은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후쿠오카에서 맛봤던 음식들은 모두 맛이 좋았다. ‘무슨 역 몇 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몇 미터를 가면 있다는 식당’도 좋았겠지만 굳이 찾아다니지 않았던 이유는 도시 속의 또 다른 도시라는 평가를 받는 캐널시티(Canal City)의 식당가에서, 지하철역에서,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모든 음식들이 ‘미각(味覺)을 통한 피서’를 완성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하카다(博多)역 안에 있는 ‘il Forno del Mignon’의 크루아상은 잊을 수가 없다. 시쳇말로 ‘강추’다.

  후쿠오카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다. 길을 가다 눈이 마주쳐도 미소를 지어주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바쁜 듯 보이는 도쿄 사람들과 다르고, 해학적이기는 하나 자신들만의 자부심으로 가득 찬 오사카 사람들과도 다르다. 서양 문물을 가장 빨리 접했던 나가사키가 있는 규슈 지방의 대표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글로벌한 느낌’마저 감돈다. 맛과 멋, 높은 삶의 질과 일본답지 않은 여유 있는 도시 디자인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후쿠오카 여행을 권한다. 인천공항에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1994년 이후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록된 2016년 8월의 피서 여행은 맛으로 시작해 멋으로 이어지고 다시 가고 싶은 여운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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