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숭실의 학생들은 특별한 방학을 보냈다. 방학 때마다 재학생들이 학생전도대를 조직하고 자비를 들여 국내는 물론 만주지역까지 순회하며 전도활동을 실시했던 것이다. 1900년 처음 조직된 전도대의 활동은 숭실이 폐교되기 직전 해인 1937년까지 자발적이고 지속적이며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전도대는 강연을 담당하는 학생들과 주악(奏樂)을 담당하는 학생들로 구성되었고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4주간 전국을 순회하며 전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수준 높은 강연회 및 음악회를 개최함으로써 가는 곳마다 지역민들의 큰 관심과 환영을 받았다. 특히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강연회는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편 조선총독부에 의해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소굴’로 지목받은 바 있는 숭실이었기 때문에 학생전도대 역시 일제 당국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일례로 1920년 4월 초순 학생전도대 16명이 전국 순회 전도를 실시하던 중 목포 양동교회에서 행한 강연 내용이 문제가 되어 우호익 등 학생 6명이 일본경찰에게 피검되었고, 이 가운데 박형룡과 송강선은 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다. 

  1920년 8월 29일 안주군에 위치한 유신학교의 초빙을 받은 학생전도대는 안주 지방에 도착함과 동시에 지방 경관의 감시를 받다가 급기야 연사 김태술의 강연 도중 경관에 의해 강연회가 중단되고 김태술은 연금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일 밤에는 음악대장 위혜진을 비롯한 전도대원들이 선천경찰서 폭탄 투척 혐의를 받아 20일 구류에 처해졌고 단장인 김형재와 조만식은 한동안 더 구류되었다.

  이처럼 숭실의 학생전도대는 민족의 복음화는 물론 애국계몽의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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