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 그것도 신선한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푸르디푸른 해변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푸른 해변에서 각기 다른 포즈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들 예술가처럼 보인다. 유명한 화가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망중한을 즐기는 것 같다. 사실 이 도시에서 샤갈, 마티스, 피카소 같은 세계적 화가들이 마지막 여생을 즐겼다. 전 세계 부호들과 예술가들은 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할까.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 위에 ‘돈의 지도’를 그리거나 예술적 상상력을 펼쳐 놓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미국의 마이애미 해변에도 부호들의 집이 넘쳐나지만 지중해 최고의 휴양도시로 꼽히는 이 곳에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부자와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쪽빛 바닷물의 해안’이라는 뜻을 가진 코뜨 다쥐르 지방의 보석 같은 도시 니스(Nice)에 도착했다. 니스를 중심으로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면 모나코 공국이 나오고 내려가면 영화제의 도시 칸(Cannes)이 나오는데, 이것만으로도 꼬뜨 다쥐르 지방은 프랑스 최고의 관광지가 아닐 수 없다. 승리의 여신 니케(Nike)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니스는 도시 안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승리할 수 있는 자신감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는 것 같다.

  지난 7월 니스는 IS 추종 세력의 잔악한 테러 행위로 얼룩졌다. 괴한이 탄 차량이 프랑스 혁명 기념일을 맞아 거리로 나온 인파를 향해 무자비하게 돌진해서 8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사망자와 부상자의 국적을 파악해보니 공식적인 기록만 21개국이었다고 한다. 가히 전 세계인의 휴양지라고 할 수 있는 장소가 피로 물들게 된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평온한 도시를 ‘패닉’으로 몰고 간 테러 분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이제 니스의 해안조차 마음 놓고 거닐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픈 마음이 든다. 니체(Nietzsche)는 니스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마무리했는데,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책의 제목을 ‘테러는 니스에서 절대 안 된다고 해라’라 고 바꾸지 않았을까. 애통한 마음에 생겨나는 짓궂은 상상이다. 테러는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될 수 없다.

  ‘영국인의 산책로’라는 뜻의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파라솔은 장관을 연출한다. 부산 해운대에서 바가지를 쓰고 업자에게 빌린 천편일률적인 파라솔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어쩌면 가장 부정적인 경험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 대비되어 재현된다. 왜 다시는 빌리고 싶지 않은 부산 해운대의 파라솔이 생각나는 것인지. 햇빛에 굶주린 영국 귀족들이 왜 이곳을 개발했는지 이해가 된다. 관광은 큰돈을 써서 알리고 오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 내재해 있는 전통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치가 좋다며 알리고 권유하는 것보다는 김치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니스의 파라솔과 해운대의 파라솔의 차이는 이것이 아닐는지.

  테러의 여파로 니스 여행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구시가와 신시가를 잇는 마세나 광장에서 여러 가지 축제의 다양함을 맛보고, 쪽빛 바다 꼬뜨 다쥐르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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