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ㄱ대학에 재학 중인 A 양은 졸업까지 한 학기만 앞두고 있다. 취업준비에 여념 없는 A 양은 고민에 빠졌다. 바로 ‘졸업인증제도’ 때문이다. 지난 2012학년도 이후 입학한 학생들은 △역사 사상 △문학 △과학 분야의 추천도서 99권 중 10권을 읽고 시험을 통과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 양의 경우 지난 학기까지 고전독서인증을 6권밖에 받지 못해 나머지 4권은 고전 특강으로 대체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졸업 요건을 이수할 수 있는 고전 특강의 경우 경쟁률이 높아 수강신청에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A 양은 겨우 책 4권 때문에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졸업인증제는 학점과 졸업논문 등 기본적인 졸업 요건 외에 추가로 인증을 받아야 졸업장을 주는 제도다. 사회와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대학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대부분 대학이 운영하고 있다. 기독교 대학의 채플을 비롯해 △토익 △한자능력검정 △고전독서인증 △인턴십 이수 △인성교육 △프로그래밍 과목 이수 등 대학별로 요구하는 조건은 다양하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졸업인증제의 까다로운 조건이 취업을 방해한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 학

  “졸업인증제는 취업 경쟁력과 사회적 소양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제도”

  성균관대는 전국 대학 중 최초로 지난 1996학년도에 ‘영어졸업인증제’를 도입하면서 졸업인증제를 시작했다. 이후 성균관대는 지난 2003학년도에 ‘삼품제’라는 졸업인증제도를 추가했다. 삼품제는 학생들이 이수한 졸업 학점과는 별도로 △컴퓨터 △영어 △사회봉사에서 일정 점수를 얻어야 졸업할 수 있는 제도다.

  졸업인증제도는 성균관대를 시작으로 전국 대학으로 퍼져나가면서 인증 대상도 다양해져 기초소양은 물론 전공과목에도 적용됐다. 특히 취업률이 대학의 주요 평가지표가 되면서 많은 대학은 학생들에게 취업에 도움이 되는 인증을 마련했다. 연세대는 문과대학에 한해 제2외국어 6학점 이수를 졸업요건으로 하고 있다.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가 이수 대상이다. 연세대 문과대학 행정실 이상의 팀장은 “학생들이 여러 외국어를 습득해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하자는 차원에서 마련했다”고 전했다. 또한, 기업에서 실질적으로 요구하는 각종 자격증 취득을 졸업요건으로 둔 학교들도 있다. 중앙대는 지난 2012학년도부터 한자자격증 취득을 의무화했다. 이 외에도 학생들의 사회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 고전독서나 사회봉사활동을 졸업요건으로 세운 학교도 있다. 학생들에게 창조적 사고를 함양하게 하고 특색 있는 인문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덕성여대의 경우 사회봉사를 100시간 채워야 졸업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현정 사무총장은 “대학교육 강화와 기업체 채용 시 우대 등 바람직한 측면이 부각되면서 영어·컴퓨터 운용능력 등을 요구하는 ‘졸업인증제’ 시행 대학이 늘었다”면서 “특히 일부 지방대를 중심으로 토익성적과 컴퓨터 활용능력 외에 제2외국어나 전공 관련 자격증, 봉사활동 등 점차 졸업인증 시행 범위도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학생

  “졸업인증제, 도리어 취업에 방해되고 있어…”

  그러나 졸업인증제를 진로나 적성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거나 인증요건이 까다로워 취업 준비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학생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기도 소재 ㄴ대학은 지난 2013학년도 이후 입학생부터 졸업생들의 현장실무능력과 진로 완성도를 높인다는 취지로 인턴십 의무 이수제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진로 취지와 어긋나는 인증제도로 인해 시간낭비만 된다는 것이 다수 학생들의 입장이다. ㄴ대학에 재학 중인 B군은 “현재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인턴십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졸업요건 때문에 인턴십을 해야 한다”며 “이는 저뿐만 아니라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시생들에겐 시강낭비일 뿐이다”고 밝혔다.

  까다로운 졸업인증 기준에 비해 그 효용성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있다. 성균관대 학생들은 △사회봉사활동 △국제언어 인증 △IT역량 개발 등 세 가지 분야가 담겨있는 ‘삼품제’ 인증을 받아야 졸업할 수 있다. 이 중 한 가지를 충족하지 못해 졸업심사에서 탈락한 C 양은 “삼품제는 사실 이력서 기본 스펙을 채울 만한 정도일 뿐, 그 이상으로 취업이나 진로에 도움 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인증용 자격증을 따느라 방학 때까지 시간을 쪼개야 했고 학원에 낸 수강료도 부담스러워 힘들었던 기억만 남았다”고 말했다. 또한, 실제로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졸업인증제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CJ계열의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단순히 교육을 듣거나 특정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졸업인증제가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고 참고만 하는 정도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졸업 인증을 위해 비싼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비판했다. 외국어 특화 대학인 서울 소재 ㄷ대학의 경우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는 자체 언어인증 시험에서 상당한 수준의 점수를 받아야 졸업할 수 있다.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은 영역당 3만~6만 원 가량의 응시료를 내고 재시험을 봐야 한다. 언어인증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 특강으로 대체할 수 있는데, 대체특강을 들으려면 교내 교육기관에 고액의 수강료를 내야 한다. 이 밖에도 토익과 같은 영어 공인인증 시험 성적에 더해 중국어 성적까지 졸업요건에 포함하는 학교가 늘어나는 등 대학 졸업을 향한 길목은 더욱 험난해지고 있다.

 

  졸업인증제도를 없애버린 학교도 존재해…

  번거로운 졸업인증제가 취업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더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인증요건을 대폭 완화하거나 아예 폐지한 학교도 점차 늘고 있다.

  충청 소재 ㄹ대학의 경우 졸업인증제가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필수과목을 이수하는 대신 학사 논문이나 초보적 지식을 묻는 간이시험으로 대체했다.

  이화여대는 지난 2000학년도에 영어와 정보화 과목을 필수 졸업 요건으로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졸업인증제가 대학들을 취업 양성소로 기관화하고 학생들에게 등록금 외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한다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수용해 지난 2006학년도에 폐지했다. 이화여대 김문현 교무처장은 “사회 분야마다 요구하는 것이 달라져 학생들이 정해 놓은 점수에 얽매이게 강요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해 폐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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