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15일 US 항공기 1549편이 뉴욕 허드슨 강에 비상 착수다. 사상자는 0명. 

  당시 비행기의 기장이었던 체슬리 설렌버거는 새 떼와의 충돌로 양 날개의 엔진이 손상되었음에도 155명의 탑승객을 생환 시킨다. 이 기적과 같은 실화는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테러로 지친 미국에 한 명의 영웅을 탄생시킨다. 영화 <설리>는 이 인간승리의 신화로부터 시작한다. 영웅의 탄생, 그 뒤편의 딜레마가 바로 영화 <설리>의 주목할 만한 시선이다.

  기적적인 생존 이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평범한 기장이었던 설리(톰 행크스)에게 쏠린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8초의 추락 순간은 다양한 항공전문가들의 견해를 통해 문제 제기 된다. 핵심은 회항 가능성에 있다. 그들은 엔진이 파열되었음에도 항공기가 충분히 출발지 라과디아로 회항할 수 있었음을 주장한다. 결국 승객들을 더 큰 위험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설리라는 것. 그들의 강경한 주장과 사고 후유증에 맞물리며 설리는 혼란을 겪는다. 그 속에서 설리는 사고 당시의 순간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재생한다. 세 차례 플래시백 되며 재구성되는 추락의 순간은, 설리의 심리 변화를 플롯화하며 그 자체를 재난 수습의 과정으로 확장시킨다. 덕분에 영화는 단순한 영웅 서사에 그치지 않는다. 자기반성과 회의가 영화 전반에 짙게 깔리며 개인이 갖는 인간다움에 대해 조명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위해 갈등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악인과의 갈등 대신, 개인이 갖는 신뢰의 힘을 담담하게 풀어낼 뿐이다. 42년간의 비행이 만든 설리의 직관은 문명이나 과학, 이성을 통해 설명할 수 없다. 문명화 시대를 상징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마저도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굳건한 직관과 믿음 앞에서는 그 허점을 내보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고 조사 과정에서 설리가 보여주는 일관된 신념은 보는 이들에게 더욱 묵직한 울림을 준다. 미디어 속 하나의 뉴스는 이렇듯 거장의 세심한 분해와 재조립을 거치며 모두를 위한 사연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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