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나폴리,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호주의 시드니는 세계인이 알아주는 미항이다. 여기에 일본의 고베,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중국에 반환된 홍콩, 그리고 한국의 목포와 부산까지 열거하면 항구의 아름다움을 견주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의 대전(對戰)이 상상된다. 여행객은 아름다운 항구에서 도시의 숨결을 느끼고 바닷바람이 도시를 감돌 때 생기는 각기 다른 소리를 감상한다. 마치 코르크에 배인 와인의 향기를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그동안 여러 항구도시를 다녀봤지만 난 이 도시를 미항의 으뜸으로 올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의 MIT공대와 견주어도 꿀림이 없는 이스라엘 IT 스타트업의 산실 테크니온(Technion)공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카르멜 산 위에 있는 엘리야의 동굴(Elijah’s Cave)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심장의 박동 수가 증가하는 것 같았다.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하이파(Haifa)로 유럽 쪽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을 가르며 차를 몰았다.    

  엘리야는 구약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선지자 중의 한 명이다. 바알 신을 숭배하는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의 악행에 당당히 맞서 승리를 쟁취한 영웅이다. 그가 바알 신 추종자의 맹공(猛攻)에 몸을 숨겼던 동굴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것이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릴 적 동네 교회의 ‘유년성경학교’에서 배웠던 바로 그 엘리야가 있었던 곳. 내가 유학했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건너편에 펼쳐진 겟세마네 동산은 있는 듯 없는 듯 일상의 일부분이었다면 엘리야의 동굴은 그야말로 ‘성지(聖地)’로 다가 왔다. 예루살렘은 내게 일상이었고 하이파는 여행지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은 아닌지 지금 다시 그 때의 기분을 반추해본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신성시하며 예배드리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라는 현지인의 설명에 평화를 갈구했던 엘리야의 힘이 느껴졌다. 

  하이파를 더 의미 있게 해주는 장소는 바하이교(Bahaism) 사원이다. 페르시아인 바하 울라는 19세기 중엽에 전 세계 모든 종교의 반목을 거부하며 인종적, 종교적, 계급적 편견을 타파하는 단일종교를 창시했다. ‘바하 울라’는 아랍어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바하이교는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등의 모든 종교에서 주장하는 선(善)을 채택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종교적 테러가 발생하는 이스라엘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바하이교의 교리는 설득력이 있다. 여러 나라에 걸쳐 5백만 신도를 보유한 바하이교의 총 본산이 이 곳 하이파의 카르멜 산 중턱에 세워져 있다는 것은 큰 의미심장한 일이다. 모든 종교의 장점만을 취한 것이 조금은 인위적이고 허황된 꿈처럼 생각되었지만, 남녀평등과 인류의 단일성을 주창한 것은 현재 지구촌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반인륜적 테러행위에 호소하는 바가 크다. 

  수많은 미항들은 각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겠지만 평화를 갈구하는 성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은 하이파 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아름다운 미항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항은 조건은 현란한 조명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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