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보다 어려운 졸업
입학보다 어려운 졸업
  • 한명근(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사)
  • 승인 2016.10.10 22:20
  • 호수 11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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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한문, 이과, 수학, 국어. 1912학년도 숭실대학 입학시험 과목이다. 입학 자격은 중등 과정의 학교 졸업자 가운데 18세 이상 세례교인으로 품행이 단정한 자로 한정했으며, 특히 교회와 목사의 확인서 제출은 필수였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경쟁률은 2대 1을 상회했다. 
 
  이들 입학생 가운데 졸업의 영예를 얻는 자는 절반에도 크게 못 미쳤다. 1926년 엄격한 선발과정을 통과한 입학생 70명 가운데 졸업자는 19명에 불과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또는 학업수준이 미치지 못해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요인은 엄격한 학사관리에 있었다. 숭실대학의 엄격하고도 철저한 교육방침은 졸업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혹독함 그 자체였다.
 
  1924년 3월 20일 예정된 제15회 졸업식이 돌연 취소됐다. 졸업식 전날 송별연에서 졸업생 2명이 포도주를 마시고 주정을 했다는 이유였다. 주정한 2명은 끝내 졸업장을 받지 못했고, 다른 18명의 졸업생에게는 개별적으로 졸업증서를 수여했다. 
 
  1925년에는 시험 부정행위가 발각된 학생의 졸업을 1년 연기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영어시험에서 여덟 문제가 다른 학생의 답안지와 동일한 것이 드러나자 학교당국이 학교규칙상 용서할 수 없는 부정행위라고 하여 졸업 명단에서 제외했던 것이다. 졸업식에 참석한 이 학생은 증서 수여자 명단에서 본인의 이름이 빠진 것을 확인하고 읍소했지만 허사였다. 이 학생은 끝내 숭실대학의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당대 조선의 최고학부인 숭실대학은 신학문의 열정을 가진 청년들이 동경했던 목표였다. 전국 팔도의 청년들이 입학의 문을 두드렸고 4년간의 피나는 노력과 절제된 생활로 졸업의 영예를 얻었다. 그리고 졸업 이후 대부분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학교를 세우거나 교회를 세워 교육계 및 종교계의 지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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