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한 부부가 있다. 기획자와 포토그래퍼로 만난 그들은 반복되는 일상과 지나친 업무에 지쳐 1년간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자고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모아둔 돈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결혼을 앞두고 그들은 단돈 90만 원으로 결혼하고 나머지 돈을 모두 여행비로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414일간 중남미와 유럽, 그리고 북미를 거친 머나먼 여정이 시작됐다. “414일간 신혼여행을 다녀온 셈이네요”라며 환하게 웃는 두 부부의 모습에서는 행복이 느껴졌다. 자유로운 낭만가들의 남미 여행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오재철(이하 오): 저희 부부는 중남미와 유럽, 북미 순서로 세계여행을 다녀왔어요. 작년에 유럽 여행기를 담아 책을 냈고 지난달 드디어 남미 여행기를 책으로 냈어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남미 국가로 여행을 가곤 해요. 얼마 전 브라질 리우에서 올림픽도 열려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죠. 예전에 비해 사람들이 남미를 익숙하게 여기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해요. 사실 남미는 우리나라와 굉장히 친숙한 나라예요. 지금 틀어놓은 영상의 멜로디가 들리시나요? 이 음악은 멕시코의 대중가요예요. 사실 남미 사람들의 정서와 한국 사람들의 정서가 비슷한 면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음악도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이 자주 가는 여행지 중에 하나인 유럽도 15년 전에는 매우 가기 어려웠어요. 너무 멀고 우리에게 익숙하지도 않았죠. 그러나 요즘 유럽은 여행지로 한 번씩 다 갔다 오는 추세예요. 저는 남미도 앞으로 이렇게 될 거라 생각해요. 지금은 먼 나라로 느껴지지만 향후 10년 안에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될 거예요.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특이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제 강연을 더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네요.

 

  Q. 제가 쿠바에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그곳에서 어떻게 숙박했는지 듣고 싶어요.


  정민아(이하 정):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저희가 머물던 가정집의 주인으로부터 그 지역에 사는 친구를 소개 받았어요. 그 친구 주소를 알려주고 미리 전화를 해두면 그 친구 집에 가서 머무는 데 아무 무리 없어요. 또 버스터미널에 가면 일명 ‘삐끼’들이 정말 많아서 그 사람들이 추천해 주는 숙소에 머물 수 있었어요.


 : 저는 다른 곳에서 ‘10년 안에 사라질지 모르는 여행지’라는 이름의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1순위로 쿠바를 꼽았어요.
  쿠바에는 올드카가 굉장히 많아요. 요즘 나오는 차가 아니라 1950년대에 사용했던 자동차, 에버랜드 놀이동산에 가면 볼 수 있는 차들이 길거리에 널려 있어요. 이런 독특한 쿠바의 문화는 사실 쿠바가 다른 나라와는 전혀 수교를 맺지 않아 차를 수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죠.
  그런데 작년부터 미국과 수교를 시작하면서 쿠바 사람들의 올드카 문화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어요. 올드카들이 새로운 차, 소나타나 엑센트로 바뀌게 될 것이고 쿠바의 전통적인 건물에는 맥도날드와 KFC가 들어오고 간판도 들어서겠죠. 쿠바에 가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최소 3~5년 안에 가셔야 해요. 10년 후에 가게 되면 여러분이 상상하는 쿠바의 모습이 사라질지도 몰라요.

  정: 사실 쿠바에 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영화를 보고 쿠바의 열정적인 음악에 반했기 때문이에요. 저희가 춤과 흥을 잘 발산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열정의 피가 끓고 있어 쿠바에 꼭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쿠바에서 가장 큰 도시인 아바나를 갔는데 그곳에는 제가 원하던 음악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버스로 16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산티아고 데 쿠바로 갔는데 바로 그곳에서 제가 꿈에 그리던 영화 속 음악을 보게 됐어요.

  오: 길거리 오픈바에서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해요. 오픈바 곳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흥을 표출하죠. 제가 지금 보여드리는 사진에서 하얀 모자를 쓴 분은 관광객인데 음악을 듣고 흥에 겨워 바이올린을 꺼내고 같이 연주를 했어요. 이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현지인과 관광객이 한데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Q. 작가님들이 쓴 남미 책에 여행지가 10개국 정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장 애착이 갔던 나라나 도시가 있다면?


  : 제가 매우 인상 깊었던 섬 중에 갈라파고스가 있어요. 갈라파고스에는 사실 동물을 보러 갔어요. 그런데 신비하고 새로운 동물을 봐서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의 경계가 없기 때문에 좋았어요. 동물들이 사람을 경계하지 않아요. 그 동물들의 선조가 인간에게 공격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에 인간을 보면 자신과 똑같은 동물로 대해요. 만약 새라면 저희를 덩치 큰 타조로 보는 것이죠. 심지어 신기해서 따라다니기도 해요. 사진을 찍고 돌아서면 새들이 따라와요.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 물개가 같이 와서 수영을 해요.
대신 관광객들이 동물을 터치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해요. 사람의 작은 제스처가 동물에게 위협이 되는 순간 동물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깨지기 때문이죠. 특히 동물을 죽이면 큰 벌을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고 잘 보존된 자연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 저 같은 경우에는 가장 좋았던 곳으로 우유니 소금사막을 이야기해요. 사실 요즘 사람들에게 좀 흔해지긴 했지만 그 특유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는 곳이죠. 우유니 소금사막은 말 그대로 소금사막이에요. 바닥이 하얀 소금으로 이뤄져 있죠. 사실 소금사막은 다른 곳에도 있지만 우유니가 특별한 이유는 우기에 있어요. 우기 때 비가 오면 물이 고이는데 물 위를 걸어 다닐 수도 있어요. 물이 얕기 때문에 물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반사시켜요.
  그 소금바닥은 지평선이자 수평선인데 이것을 기점으로 데칼코마니가 펼쳐져요. 우유니의 별명은 두 가지예요. ‘지구상의 가장 큰 거울’,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에요. 이 우유니는 낮에도 멋있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밤이에요. 사실 우리가 이런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보통 바닷가인데 바닷가와 달리 사막은 360도가 다 반사되는 느낌이에요. 마치 넓은 태평양 정중앙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해가 지기 시작하면 하늘의 태양과 땅의 태양이 만나요. 둘이 하나의 태양이 되면서 말도 안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노을이 지기 시작하죠. 곧 노을이 지는 곳을 제외하고 다 어두워져요. 인공불빛이 없어도 별이 많기 때문에 충분히 밝아요. 마치 거대한 거인의 입속에서 입이 서서히 닫히는 것 같아요. 거인의 입이 닫히면서 세상도 함께 닫히죠. 그리고 밤하늘의 별이 완전히 뜨면 땅에도 별이 뜹니다. 여러분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별들이 찰랑찰랑해요. 전 죽기 전에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당당히 우유니 소금사막을 고를 거예요.


  :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도시는 파라티라는 곳이에요. 사실 반나절이면 다 둘러볼 만큼 작은 마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의 발걸음은 그곳의 모든 골목을 구경하느라 느리기만 했어요. 그곳은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뜨는 날 마을 중 한 골목에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장관을 이룬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 골목길이 어딘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서 계속 헤매고 있었죠.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 그런 곳이 있긴 한데 어딘지 잘 모르겠어”하는 반응들이었어요. 드디어 그 곳을 찾았을 때 저희는 아이처럼 기뻐했어요. 바다에서 밀려들어온 물이 골목길을 비추고 각 건물과 나무들을 잔잔히 비추고 있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는 기억만 나요.

 

  Q. 여행의 묘미란 무엇일까요?


  : 사람과 사랑이 아닐까요? 제가 여행 중에 기운이 빠지면 오 작가는 함께 쉬어 주거나 때로는 나가자고 해서 기운을 북돋아 주기도 해요. 유럽에서 제가 다른 일행과 헤어지면서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았던 적이 있어요. 사실 그날이 제 생일이었는데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오 작가가 저를 끌고 아비뇽 축제에 갔어요. 축제에서 사람들이 저를 위해 연주하고 공연해주는 것처럼 느껴져 굉장히 위로가 되었어요. 눈물이 흐를 정도로 굳어 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어요. 나가지 않고 있었다면 분명 후회했을 거예요. 오 작가에게 너무 고마웠고 축제에서 연주를 통해 저를 위로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했어요.


  : 저는 여행이 일상과 같다고 생각해요. 항상 준비한다고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즐 겁거나 불행하지도 않죠.
  사실 평생 중 30년 이상을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1년 동안 신나게 놀다오자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뭔가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것만 생각나는 거예요. 이렇게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하다 보니 책을 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저희가 결과를 너무 바라보고 달려가기 보단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순수하게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길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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