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은 인간 고유의 무늬이다. 호랑이에게는 호랑이의 무늬가 있듯이 인간도 인간 고유의 무늬가 있다. 우리는 인문학이 있기에 인간일 수 있다. 인문학이 없다면 인간은 짐승이나 기계로 격하되고 말 것이다. 조지메이슨대학교 종교학과 노영찬 교수는 인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와 함께 인류가 당면한 위기를 파악하고 인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탐색해보자.

 인문이란 무엇인가?
 
 인문(人文)은 ‘사람 인(人)’, ‘글월 문(文)’이라는 한자로 이루어져 ‘인류의 문화’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인문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곤 해요. 자, 인문의 ‘글월 문(文)’자를 ‘물을 문(問)’자로 바꿔봅시다. 사람에게 묻고, 사람이 묻고, 사람에 대해 묻다. 많은 뜻이 생겨나죠? ‘인문’이란 단어에 가치를 부여한 겁니다. 
 인문학을 한다면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해요. 인문학은 ‘인간 이해’의 학문이기 때문이죠. ‘인간 이해’란 자신과 타인을 통틀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에요. 끊임없이 질문하며 인간의 원초적인 의미에 대해서 파악하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하면 곧은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반드시 염두해야 할 점은 인문학은 독립적인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인문학은 모든 학문, 이를테면 수학과 과학에도 함축되어 있어요. 인간에 대한 물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문학을 공부 할 수 있답니다.
 
종교개혁, ‘인간 이해’를 변화시키다
 
 서구의 근대 시대는 ‘인간 이해’를 바꾸는 변환점이 되었기 때문에 인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에요. 
아마 여러분은 고등학생 시절 16~17세기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발생했다고 배웠을 거에요. 많은 이들은 종교개혁이 단순히 로마 가톨릭 교회의 쇄신을 요구하는 개혁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종교개혁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서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어요.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르네상스 △프랑스혁명 △산업혁명 등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들이 발생했죠.
 이러한 환경 속에 칸트, 데카르트 등 많은 철학자들이 사상적인 변화를 주도하게 돼요. 합리주의와 개인주의가 싹텄고 이러한 사상이 사람들을 지배했어요. 동시에 사람들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종교개혁 이후 모든 이들이 절대자와 직접 마주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 이해’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죠. 
 이와 함께 20세기 이후에 과학이 자연과학과 공학으로 분리되면서 각각의 학문이 전문화되기 시작했어요. 뒤따라 근현대의 사고 형태도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변화했고, 결과적으로 △개인주의 △과학적 사고방식 △논리 △이성이 학문의 중심을 이루게 되요. 결과적으로 △개인주의 △과학적 사고방식 △논리 △이성이 학문의 중심을 이뤄 인류는 커다란 변화를 이룩했죠.

 제2의 차축시대, 또 다른 변화의 시대
 
 종교개혁 이후 지배적으로 자리잡았던 사상이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요. 더 이상 △이성 △합리 △논리 △과학적 사고는 절대적이지 않게 되고 △감정 △직관 △종합적 사고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거에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양 과목을 가르쳤던 뚜 웨이밍 교수가 “도덕적 유추”라는 과목을 20년 전에 개설했었어요. 이 강의는 수강생이 600명, 조교가 12명이었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고 해요. 첫 수업 때 뚜 웨이밍 교수는 신입생들에게 한 가지 질문이 담긴 설문지를 나눠줬어요. 그 질문은 △이성 △합리 △분석적 방법 △개인의 권리와 △감성 △직관 △종합적 사고 △인간 공동체 중 중요한 쪽을 고르라는 것이었어요. 약 20년 전만 해도 대다수가 전자를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10년 전부터는 점점 후자를 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해요. 물론 이러한 사실로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죠?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그가 저술한 『시대의 정신적 상황』에서 제1의 차축시대에 이어 제 2의 차축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해요. 칼 야스퍼스는 차축시대를 인류의 문화가 정상에 도달한 시기라고 정의했어요. 그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노자 등 여러 사상가들이 활동했던 기원전 500~800년 경을 제 1의 차축시대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야스퍼스의 주장을 반드시 주목해야만 해요. 왜냐하면 이 제2의 차축시대는 인류가 발전하는 발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인문학이 열쇠가 되다
 
 새로운 차축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열쇠는 인문학이에요. 미국은 교육 전반에 인문학을 적절히 적용한 나라 중 하나에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963년부터 나라별로 중학생들의 수학, 과학 실력을 측정하고 있는데 아시아 학생들의 실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어요. 반면에 미국의 순위는 34개의 국가 중 28번째였죠. 그런데 이상한 점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의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주도해 온 나라는 미국이었다는 점이에요. 이렇게 미국이 과학계를 주도한 것은 자본이 많다는 점이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미국의 교육 방식이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점이에요. 가령 미국의 교사들은 단순히 수학의 공식을 외우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수학 뒤에 숨어 있는 △논리 △사상 △가치 등을 가르쳐요. 그래서 미국의 수학 교과과정은 한국보다 1년이나 뒤쳐져 있음에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미국 학생들의 이해는 더 깊어지고 다른 나라 학생보다 응용력이 뛰어나게 되는 것이죠. 
 미국의 학생들은 순전히 수학을 탐구하기보다는 인문학을 통해 수학이 내포하고 있는 세계관을 이해했어요. 이처럼 인문학적 논리와 상상력을 통해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했을 때 단순히 교과 과목이었던 수학이 진정한 학문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인류는 종교개혁을 비롯한 여러 사건을 거쳐 성장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인류의 인문학적 발전은 정체되어 있어요. 인문학을 통해 ‘인간 이해’를 달리해 인류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재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고 말았거든요. 
 제가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는 가시적이고 양적인 의미에서의 위기가 아니에요. 진짜 위기는 우리가 인문학의 원초적인 면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에요. 많은 인문학 강의가 있지만 인문학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강의를 하는 교수는 거의 없는 상황이에요. 결국 인류는 인문학이 자연과학·기술문명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그리고 인문학이 향하는 세계관이나 우주관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는 현실에 놓였어요.
 강연 초에 말했듯 물음이 가장 중요한 요소에요. 생각의 틀을 바꾸어서 물음을 지속적으로 던져야만 인문학이 발전할 수 있어요. 감정과 직관에 근거한 인문학을 통해 학문을 연마했을 때 인류 발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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