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트 쥐스킨트의 베스트셀러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는 향기를 구분하고 판별하는 재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물이다. ‘향기의 천재’라고 불리는 재능에 힘입어 그루누이는 인기 향수의 향기를 그대로 재현함은 물론, 자기 임의로 향을 추가해 더 훌륭한 향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루누이의 향수는 다른 향수 제조자들이 만들어 낸 그 어떤 향수보다 더 큰 인기를 끌게 되고 그루누이(엄밀히 말하면 그루누이의 고용주)는 부와 명성을 얻는다. 이를 현대 저작권법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그루누이가 저작권법을 침해한 게 아닌지, 향수는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향수는 조향사가 자신의 감각과 연구를 기반으로 합성한 것이니만큼 당연히 저작물로 인정될 것 같지만 현재까지 향기를 카피한 경우는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지난 06년 랑콤 사(社)는 자사 제품의 향기와 매우 유사한 향수를 제조·판매한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프랑스 민사 최고법원인 파기원(Cour de Cassation)은 이건에 대해 향수는 저작물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 중에서 특정성이 결여되어 정신적 창작물로 볼 수 없다고 하여 지난 13년에 저작권법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 판례를 따라, 온오프라인에서 ‘명품 향수 재현’이라는 이름을 달고 카피 향수가 팔리고 있다(향수 브랜드의 상표나 디자인 등을 연상시키는 광고를 내세우는 경우는 단속 및 처벌하고 있다). 이에 대해 향수업계는 향수를 예술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 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 다음으론 ‘눈에 보이는 색(色)’의 경우를 이어서 이야기할 수 있겠다. 과거에는 색이 개인의 지위나 재력의 표현 수단이었고 계급에 따라 이용이 제한되기도 했다. 민주주의 사회로 들어서면서, 특정 계급이 색의 권리를 독점하는 경우는 사라졌으나 최근 ‘색의 이용 제한’과 관련한 이슈가 논란이 된 적 있다. 논란의 대상은 지난 14년 영국의 서리 나노시스템즈사(社)에서 나노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반타 블랙’이라는 색상(신물질 염료)이다. 현재로선 ‘가장 순수한 검정’인 ‘반타 블랙’은 빛을 흡수하는 특성을 가졌는데 입체적인 물체에 도포했을 경우, 우리가 시각적으로 해당 물체를 검은색 평면으로 인식할 정도로 흡수율이 대단하다. 산업 분야에서의 이용가치가 큼은 물론 예술적인 측면에서의 활용가치도 큰 염료인데, 문제는 이 염료를 예술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한 개인이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검정색’의 예술적 이용 독점권을 가진 인물은 인도 출신 예술가 아니쉬 카푸어다. 서리 시스템즈사(社)가 색 그 자체를 창조한 것은 아닐뿐더러 한 개인이 색을 독점하게 한 것은 예술 분야의 창작과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향기와 색’의 저작권 이슈는 따지고 보면 기술발전으로 인해 전에 없던 문제가 생긴 것이다(성분 분석 기술을 이용하면 그루누이처럼 향기를 재현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노기술을 서리 시스템즈사(社)와 대등하게 다루는 기업이 등장해 ‘반타 블랙’과 비슷한 수준의 검정색을 만들어 낼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발전과 사회변화에 따라 저작물과 저작권의 개념과 인정 범위, 논란의 쟁점 등이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게 될 새로운 유형의 저작물은 어떤 형태일지 미리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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