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에서 오전 10시에 탄 버스가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즈음 국경을 통과하여 그리스 알렉산드로폴리스에 도착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은 언어와 문화, 인종과 종교, 그리고 사람들의 성향마저 구분짓는 경계선이다. 터키에서는 형제의 나라에서 왔다며 가는 곳마다 악수를 청했는데, 국경도시인 이곳에서는 동아시아에서 온 사람을 신기한 듯 쳐다볼 뿐이다. 식당에서는 일흔이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이 나에게 와서 젓가락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며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한다. 지금이야 그럴 리 없겠지만 23년 전에 벌어졌던 유쾌한 에피소드였다. 알고 보니 노인은 그 식당의 주인이었고 젓가락 사용법을 가르쳐 준 대가로 음식 값을 받지 않았다. 인심 좋은 도시는 여행자의 발을 묶어 다음날 데살로니카행 기차를 타게 만들었다. 신약성경 데살로니카 전후서(前後書)의 바로 그 데살로니카. 기차 밖 풍경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각종 영웅과 괴물의 모습처럼 다가와 설레는 마음을 증폭시켰다.

  데살로니카서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쓰인 권(卷)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카 사람들에게 범사에 감사할 것과 경건한 삶을 권하는 편지를 보냈고, 이 편지는 신약성경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되며 기독교의 발전과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악랄한 유대인 상인도 경계한다는 희랍(希臘)상인의 나라인 그리스였지만 이 도시 사람들은 전부 온화한 표정을 지녔다. 편견이라는 말은 나쁜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사도 바울의 편지가 ‘좋은 편견’으로 나를 내몬 것은 아닌지. 사람의 감정이란 사실과 현실을 언제든 왜곡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음식에 ‘와사비’를 악의적으로 더 넣어주는 어느 이웃 나라 사람 같은 이들은 없었다. 

  데살로니카 해변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화이트 타워’라고 불리는 15세기 베네치아 인들이 지은 탑이 있는데, 오스만 제국 지배 당시에는 이 탑에서 죄수들에 대한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고 한다. 탑 내부에서 사람의 피가 배어나와 탑이 빨갛게 변했는데, 사람들은 핏자국을 지우느라 탑을 하얗게 칠했고 탑의 이름은 모습 그대로 ‘하얀 탑’이 되었다. 절규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빨간 피를 감추느라 하얀 칠을 했던 것이 결코 사도 바울이 예상했던 모습은 아니었겠지만 잔혹한 역사의 진행 순서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탑이 왜 하얀지 모르는 여행객들은 이 탑 위에서 에게 해(Aegean Sea)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것이다. 여행은 가끔은 모르고 지나가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전쟁과 이민족들의 지배로 인해 1948년 재건된 성 드미트리우스 교회와 약간의 로마 유적을 제외하고는 사도 바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성지는 없었지만 깍쟁이 같은 아테네와 비교했을 때 이 도시가 보여주는 여유와 겸손은 인상 깊은 것이었다. 사람들을 감화(感化)시킨 선지자의 노력과 그의 여정 속에서 탄생한 ‘위대한 서신’의 무게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데살로니카 여행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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